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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 (02.11.2024)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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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257회 작성일 Feb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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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4년 2월 11일
본문:갈라디아서 6: 6-10
제목: 심고 거두는 법칙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이 세상에는 자연법칙이 존재합니다. 뉴톤은 사과가 저 쪽 하늘로 떨어지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연구 끝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배가 바다물에 빠지지 않고 뜨는 이유는 부력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를 타면서 별로 놀라지 않는 게 우리이지만 사실 놀라지 않는 게 더 놀랍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공기 저항과 부력 때문에 비행기 몸체도 무거운데 수많은 사람들과 화물을 싣고도 거뜬히 공중에 떠서 날아다닙니다. 참 신기합니다. 왜 배가 물위에 뜨고, 비행기가 공중에 뜹니까? 발견한 자연 법칙을 잘 응용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자연법칙을 만들어 놓으셨어요. 그것을 과학자들이 응용해서 우리가 편리하게 자동차, 비행기, 배를 타고 다닙니다.

자연법칙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영적 세계에도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하나님과 죄는 함께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 법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지은 자가 죄의 형벌인 죽음을 면할 수있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죄의 형벌을 면할 수 있다고. 이 법칙을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이 영적 법칙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적 법칙은 세상의 자연법칙보다 훨씬 더 우리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영적 법칙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 법칙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너무 너무 쉬워서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농사를 연상하면 더 분명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곡식을 거두기 원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는 일입니다. 만약 심지 않고 추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농부가 있다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추수의 양과 질, 그리고 종류도 역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심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적게 심으면 많이 거둘 수 없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곡식을 얻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게 될 것이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수확하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을 거둔다는 것이 농사의 법칙입니다. 농사는 정직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 하는 요점은 이처럼 영적 세계에서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에 아무도 바꿀 수 없어요. 그래서 “너희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왜 속이지 말라고 합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법칙을 무시하여 심지 않은데서 거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과 가르침에서 비롯합니다.

월치만 니는 중국이 낳은 아주 탁월한 목회자이자 성경 교사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후계자 휘트니스 리의 극단적 주장과 가르침으로 인해 지방교회는 이단으로 정죄를 받지만 그의 책들은 아주 영적 통찰력이 뛰어나서 영향력이 아주 컸습니다. 그런데 그의 탁월한 가르침 중에는 사람들의 신앙을 잘못된 길로 오도할 수 있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육과 영의 일을 지나치게 이분화 시킨 나머지 아예 우리 신앙을 아주 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다 육적인 일로 치부하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신앙의 행위마저도 마치 육적인 일로 여겨져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가만히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강조하다 보니 대단히 소극적이고 정적인 신앙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아주 유사한 현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오직 믿음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를 강조하다 보니 이를 마치 신앙의 행위와 노력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 잘 될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우리의 영적 태만과 신앙생활의 게으름을 합리화 시키는 발판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헌신하지 않고, 성경 공부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서도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심지 않았기 때문에 거둘 열매가 없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성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소위 시험이 들면 교회를 원망합니다. 작은 시험도 이겨 낼 만큼 신앙이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는데도 왜 변화가 없는가? 왜 내게는 거룩한 삶이 나타나지 않는가?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 않으면서 거두려고 하는 자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자가 등장합니다. 그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하만이라는 사람입니다. 왕을 죽이려고 모의하던 자들을 고발해서 왕의 목숨을 구했던 모르드개에게 왕은 상을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신하 하만을 불러서 묻습니다. “내가 존귀케 하려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만은 그 대상이 자신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가장 명예롭게 해 주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그대로 모르드개에게 실행하라고 말합니다. 하만은 스스로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은 스스로 꽤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만홀히 여긴다는 원어는 ‘상대방을 향해서 손가락으로 코를 밀어올린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상대방을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조롱한 적 없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아, 목사님, 제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조롱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가 만약 아무 것도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거나, 악한 것을 심고서 거룩한 것을 거두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조롱하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하나님의 영적 법칙을 우리 모두 소중히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형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법칙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법칙에 따라 살면 우리가 형통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순응해야 하는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이 말씀을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오늘 본문은 세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위해 좋은 것으로 심으라(6절)고 말씀합니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경은 종종 성도들에게 지도자와의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목사나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성도보다 신분이 높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고 백성에게 사죄와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십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일지라도 일반 성도보다 높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 똑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데 있어서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은 위치에 있지만 다만 주어진 사역과 기능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회자를 대할 때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대하면 됩니다. 지나치게 목회자에게 비중을 두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는 것, 둘 다 그릇된 태도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씀합니까? 그 이유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성도들보다 중요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 10:17). 물론 이외에도 우리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의 좋은 관계가 중요하기에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목회자와 함께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일까요? 그것은 말씀을 듣고 변화된 삶으로 살고,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심는 것이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목회자의 가르치는 사역이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목회자를 위해 기도로 심습니다. 또 목회자가 말씀 사역에 더욱 집중하도록 대신 다른 사역의 짐을 맡아 수고합니다. 이런 동역자들이 목회자와 함께 좋은 것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아름다운 열매를 함께 나눌 것이고, 주님께로 부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2. 성령에 따라 심으라(8절)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인격을 낳고, 그리고 인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말은 우리 삶과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와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자식이 잘못되면, 남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고, 팔자타령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면 그동안 내가 심어 왔던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부부 사이가 어느날 갑자기 나빠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 심은 것입니다. 거친 말을 심었고, 나쁜 행동을 심었습니다. 그 결과 곪아서 결국 터지는 것처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폭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래 교회에 다녔는데 열매가 없다는 말은 곧 내가 그동안 심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자신을 돌이켜 보십시오. 정말 주님 앞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까? 정말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까? 주님을 위해 정말 내 것을 바쳐서 헌신해 보셨습니까? 오늘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 참석하는 것조차 힘들어 합니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혹 직분을 받아서 집사, 권사, 장로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영은 점점 메말라갑니다. 왜냐하면 영으로 심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형통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을 따라 심어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심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령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어디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인가? 무슨 옷을 입어서 멋 낼 것인가? 어떻게 화끈하게 놀아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차, 넓은 집에서 살 것인가? 늘 이런 세상적 생각에 집중되어 있습니까? 그것이 곧 육체를 위해 심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예요. 우리 본성에 따라 살면 저절로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육체를 위해서 심으면 반드시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말했지만 이 말의 뜻은 멸망한다는 말입니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적 법칙은 육체를 따라 심으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심으면 생명과 평안을 거둡니다. 성령을 따라 심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극성맞은 일부 사람들처럼 기도원에 가고, 금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 악한 생각은 쫓아버립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 늘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성령을 따라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두 번째 영적 법칙은 육체를 따라 심지 말고 성령을 따라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선행을 심으라(9-10절)

마지막으로 선행을 심으라고 말씀합니다.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누구에게 선행을 심어야 하는가? 먼저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심어야 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심지어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도 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렇게 권면합니다. (롬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이지만 그가 절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선을 베푸는 것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선행을 베풀어야 할 대상은 믿음의 가정들입니다. 교회 안에 형제 자매에게 선행을 심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잘 섬기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목장 식구들로 부터 먼저 시작해 보십시오.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믿음의 가정들에게 선행을 베푸십시오.

우리는 언제 선행을 심어야 합니까? 기회가 있는 대로 해야 합니다. 언제 기회가 있습니까? 오늘입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내가 도와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 바로 지금 실행하는 것입니다. 내 형편이 나아지는 그 때가 아닙니다.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있을 그 때가 아닙니다. 오늘이 기회입니다.

신앙안에서 어떤 사람이 부자입니까? 하나님 앞에 많이 쌓아둔 사람이 부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많이 쌓아둘 수 있어요?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돕고 선행을 많이 하면 하나님 앞에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심으세요.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선한 일에 인색하지 마세요. 뒤로 미루지도 마세요. 기회가 올 때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 받을 기회로 주신다고 믿으세요. 얼마나 고맙습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니 말이에요. 내가 그래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 선행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그리고 선행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 선행을 하다가 낙심이 찾아옵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붇는 것과 같습니다. 과연 이렇게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결과는 내게 맡겨라고.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너희의 할 일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내게 맡겨라. 그 열매는 내가, 나의 때에 너에게 보장해 줄 것이다.’ 놀라운 주님의 약속이 여기 있습니다.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정만 5천 명이 굶주리며 주님과 함께 있을 때 한 소년이 자기의 도시락을 주님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도대체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 해결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5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믿습니다. 이 세상이 악해도 우리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실제입니다. 전능자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음을 붙잡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것을 받으셔서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보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듣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우리 속에 도무지 안될 것 같고, 쓸모 없는 것 같은 그것을 붙잡으셔서 역사하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믿습니까?

결론:
올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서, 복음을 심으십시오. 신령한 것을 심으십시오. 선행을 심으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을 형통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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