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함께 가는 여정입니다 (10.26.2025)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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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복음은 함께 가는 여정입니다 (10.26.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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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39회 작성일 Oct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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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10월 26일
본문: 로마서 15:14–33
제목: 복음은 함께 가는 여정입니다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뜨거운 선교적 열망이 담긴 로마서 15장 마지막 부분을 함께 펼쳐봅니다. 바울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로마 교회의 협력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이 단순히 2천 년 전 사도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십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초청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위대한 목적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초청입니다. 그리고 그 초청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삶의 무의미함과 단절감과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는 희망의 초청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영혼은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수백 명의 사람들의 삶을 ‘스크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곁의 한 사람과는 마음 깊이 연결되지 못하는 ‘디지털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는 질문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병상에서의 긴 하루 속에, 또 어떤 분은 밤새 아이를 돌보며 지친 몸으로, 또 다른 분은 오랜 세월 신앙을 지켜왔지만 마음이 답답한 채로 그런 질문을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져 넣을 만한 거대한 비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것은 다름 아닌, 복음과 함께 걷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개인의 구원’이나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안전한 울타리’안에 가둬두려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장엄하게 전개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은 단지 나의 안전한 울타리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복음은 단지 한 개인의 구원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울러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선포하며, 온 세상으로 확장되는 더 큰 사명을 위한 하나님의 거대한 여정임을 선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이 왜 정체되어 있는지, 왜 삶에 진정한 활력이 없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온 세상으로 확장되는, 하나님의 구원 여정에 우리가 동참할 때, 우리 인생은 비로소 삶의 의미와 방향을 되찾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거대한 여정에 동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사도 바울은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곧 ‘복음의 제사장’으로 살고, ‘미개척지’를 품고 나아가며, ‘연합과 기도’로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바울의 사명 의식, 사역의 능력, 그리고 함께 하는 공동체의 연합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은 ‘복음의 제사장’ (14–16절)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먼저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1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이 칭찬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당신들은 이 거대한 사역에 동참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 귀한 동역자들입니다”라는 깊은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쓴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심이라. 이는 이방인을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하여 받으실 만한 제물로 드리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면, 새 언약 시대의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인들을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기서 제물은 다름 아닌 구원받은 이방인 자신들입니다.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부름 받은 모든 성도의 소명입니다. 이 ‘제사장 직분’은 목회자에게만 국한된 특별한 소명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삶의 모든 자리가 곧 제사장 직분의 현장입니다. 이는 로마서 12장 1절이 선언하듯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와 직결됩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일 앞에서 잠시 멈추고 정직을 택할 때, 가정의 평화가 깨졌을 때 내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병상에서 불평 대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육아의 피로 속에서도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고귀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과 증거는 복음의 완성을 위해 함께 일하는 제사장 직분의 확장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여정 속에서 영혼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부여받았습니다.

2. 땅 끝을 향한 ‘선교적 비전’에 동참 (17–21절)

바울은 자신이 이룬 사역에 대해 자랑할 것이 있지만, 그 자랑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게 행하신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긋습니다. (17-18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의 사역은 철저히 성령의 능력과 순종의 열매였습니다.

19절,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사도 바울이 언급한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의 여정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이 전파된 지역의 거의 전부를 아우르는, 바울의 불굴의 개척 정신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일루리곤(Illyricum)’은 오늘날의 발칸반도 서쪽 지역, 즉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 남부, 보스니아 일대에 해당합니다. 당시로서는 세상의 북단 끝자락에 해당하는 그 먼 곳까지 바울은 복음을 들고 나아갔습니다. 길은 험했고,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사명 하나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여정은 단지 ‘혼자의 길’이 아니라, 성령께서 동행하시는 ‘복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여정은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 원칙을 제시합니다. 20절,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려 함이라”
바울의 사역 원칙은 단순히 다른 사역들과 영역 다툼을 피하려는 실용적 선택이 아닙니다. 이는 구약 이사야 52장 15절의 예언 성취와 연결된 신학적 사명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인용되었습니다.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열방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려는 비전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미개척지를 찾는 개척 정신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개척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다음 행선지로 서바나(스페인)를 택했습니다. 2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서바나(지금의 스페인)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서쪽 끝, 곧 ‘땅 끝(The End of the Earth)’을 상징합니다. 이미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된 지역을 넘어서, 아직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지 않은 서바나를 통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인 서바나까지 전파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지상대명령을 최종적으로 성취하려는 비전을 성취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대한 비전을 홀로 이루려 하지 않고, 로마 교회의 재정적, 인적 도움과 지원을 요청하며 그들에게 ‘땅 끝 선교에 함께 완주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 비전을 품는다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 교회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사실 우리의 삶은 종종 ‘익숙한 터’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익숙한 터’는 종종 우리를 안주하게 만들고, 결국 영적 매너리즘에 빠지게 합니다. 마치 오래된 웅덩이 물과 같습니다. 웅덩이 안이 안전하고 익숙할지 모르나, 고인 그 물은 이미 녹조가 끼고 썩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익숙한 곳은 안전한 안식처가 아닌, 영혼이  무너지는 덫이 될 수 있습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복음이 필요한 ‘새로운 터’를 찾으십시오. 그곳이 바로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목표와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미개척지’는 어디입니까? 멀리 있는 나라만이 아닙니다. 가정 안의 아직 믿지 않는 가족, 직장 에서 상처받은 동료, 병원에서 외로운 교우,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미개척지’란 단순히 지역적인 장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온전히 선포되거나 인정되지 못한 ‘영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장 불편한 관계가 여러분의 서바나입니다. 가장 대화하기 싫은 그 한 사람이 주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땅 끝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복음의 사랑을 가지고 다가갈 때, 비로소 그 관계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는 ‘새로운 터’가 되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목표와 꺼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복음의 여정은 늘 미개척지를 향해 걷는 길입니다.

3. 선교는 ‘연합’과 ‘기도’의 여정 (22–33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사역을 마쳤기에, 땅 끝을 상징하는 서바나(스페인)로 나아갈 계획을 로마 교회에 나눕니다(24절). 이 원대한 선교 청사진을 바울 홀로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의 도움과 지원을 간절히 구합니다.

그런데 이 원대한 계획에 앞서, 바울은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25-26절)“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연보)하였음이라”

바울이 전하는 연보 이야기는 단순한 구호 활동이 아닙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8-9장과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서 자세히 다룬, 민족을 초월한 교회 연합(코이노니아)의 가장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유대 교회로부터 ‘복음’이라는 ‘영적인 것’을 받았기에, 물질적인 것으로 돕는 것은 마땅한 ‘빚 갚음(Covenant Solidarity)’의 행위이며, 민족을 초월하여 복음으로 하나 된 연합의 증거입니다(27절). 교회는 결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서로에게 빚진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함께 가는 복음의 여정’이 의미하는 참된 연합입니다.

바울 시대에 이방 교회가 유대 교회를 위한 헌금을 모아 보낸 것은, 곧 오늘 우리의 헌금과 후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매 주일 드리는 헌금, 목장에서 드리는 선교 후원은 단순히 교회의 재정을 채우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여정 속에서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받은 빚을 갚고, 고립된 곳에 복음의 빛을 보내는 가장 실제적인 연합의 통로입니다. 이로써 우리 또한 바울과 로마 교회가 나누었던 그 사명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24절에서 성령이 각 성에서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증언했습니다. 로마서 15장 31절,“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라는 기도는 이 실제적인 위험(유대인들의 공격)에 대한 바울의 깊은 염려에서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 제목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서 건짐을 받고, 또한 이방인의 헌금이 유대인 성도들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기도 부탁했습니다. 사도행전 21-22장에서 바울은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는 큰 위험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로마 교회에 다음과 같이 절박하게 요청합니다.

3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이 구절은 단순히 ‘기도 부탁’이 아닙니다. 원어의 의미는 ‘함께 고통을 감당하며, 온 힘을 다해 싸워달라(Synagonizomai)’는 절규입니다. 바울은 마치 전쟁터의 전사가 후방의 지원군에게 “내가 생명을 걸고 싸우니, 제발 무기를 보내주고 나를 위해 함께 싸워달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생명과 땅 끝 선교의 성공이, 바로 지금 로마에 있는 당신들의 무릎에 달려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염려가 아니라, 함께 흘리는 피와 땀입니다.

우리가 이 절박한 기도에 동참할 때, 우리는 바울과 한 전우가 되어 복음의 여정을 함께 완주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여러분이 현장에 나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중보기도와 물질적 섬김이야말로 바울의 서바나 선교만큼이나 중요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입니다. 여러분의 중보기도가 선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여정을 함께 완주하는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결론:
우리 교회가 도시에 있는 교회들처럼 아주 크고 넘치도록 풍성한 교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고 쾌적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마음 놓고 교제하며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도중에 크고 작은 풍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 헌신과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평안한 가운데 교회는 든든히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1999년에 이 교회당에 입당하였는데 거기까지 얼마나 큰 수고와 희생이 있었겠습니까? 그 분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계시고, 타지로 이사한 분들도 계시고, 여러가지 사연으로 교회를 떠난 분들도 계십니다. 입당한 이후에 출석하신 분들은 저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며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복음을 릴레이로 이어 받아서 각자 자기 몫을 잘 감당하고 있기에, 오늘날 이 지역 사회에서 든든히 서서 복음을 계속 전하고, 코비드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교사님들을 흔들림 없이 후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사역은 혼자 달리는 고독한 경주가 아닙니다. 함께 걷는 여정이며, 함께 싸우는 전쟁이고, 함께 누리는 영광입니다.

  1. 우리는 모두 ‘복음의 제사장’입니다(16절). 우리의 일터와 가정,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며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됩시다.
  2. 우리의 시선은 ‘미개척지’를 향해야 합니다(20절).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땅 끝을 상징하는 서바나를 향했던 바울처럼,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웃과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비전에 동참합시다.
  3. 우리는 ‘연합과 기도’로 동행해야 합니다(26, 30절). 우리의 물질적 섬김과 특별히 함께 싸워주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현장의 사역자들과 하나 되어 복음의 여정을 함께 완수하는 방법을 실천합시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나는 늙고 병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나는 아이들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맡기신 복음의 미개척지입니다. 여러분의 눈물과 인내, 그 기도와 헌금이 현장의 선교사를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강력한 후방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거룩한 산 제물로 받으십니다.

우리가 이 여정에 동참할 때, 우리의 삶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와 평강을 얻게 됩니다.
바울이 마지막에 축복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병상과 일터 위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제사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완주하는 여정의 동행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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