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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08.10.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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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406회 작성일 Aug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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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8월 10일
본문: 로마서 12:3-8
제목: 믿음의 분량대로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우리는 지난주에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처럼, 단순히 예배당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예배여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복음서에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사건이 나옵니다. 많은 이들은 낭비라고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세상의 목소리는 마리아의 헌신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SNS를 보면 ‘나를 위한 삶’을 살라, ‘나만의 행복’을 찾아라, ‘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라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좋은 것을 사고, 여행도 다니며 나를 위해 살았는데, 문득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 마음은 텅 빈 것 같지?’ 이 공허함, 이 허전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마치 열심히 쌓아 올린 모래성이 파도 한 번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처럼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와 나다움을 찾는 길은 나만을 위해 살 때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나를 드릴 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내 몸과 시간과 재능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릴 때, 우리의 삶은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 사랑이 깨달아질 때, 그 사랑 앞에 우리는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싶어집니다. 내 몸과 마음, 재능과 시간까지도 ’하나님, 기쁘게 받아주세요’라고 고백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나의 몸과 재능을 주님께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바울 사도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겸손하게 인식하고, 내게 주신 고유한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기쁘게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1.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

사람의 몸은 약 1백 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이 수많은 세포들은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각각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생명’이라는 위대한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한 세포가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멋대로 커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게 바로 암세포입니다. 암세포는 몸 전체를 파괴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한 몸 안에서, 모든 지체는 맡은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면, 암세포처럼 교회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가 됩니다.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기서 ‘믿음의 분량’(metron pisteōs)이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크기와 사역의 자리, 그리고 그 사역을 감당할 믿음의 척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겸손과 자기 자리의 존중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은사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비교와 시기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 겸손한 태도가 바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비교 속에서 흔들립니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못할까”라는 열등감,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라는 교만, 모두가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할 때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그릇을 탐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나다움’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맡겨진 책임에 충성하는 겸손한 태도,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2. 각 지체와 은사의 다양성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몸이 건강하려면 각 지체가 각각 고유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그리고 6절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 보세요. 수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눈, 코, 입처럼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심장이나 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각 사람에게 꼭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라는 말은 ‘카리스마타’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보통 ‘카리스마적이다’하면 능력있게 행하는 것을 먼저 상상하기 쉬운데, 원래는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왜 주시는가? 교회 공동체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은사하면 병고치는 은사와 방언의 은사만을 거론하고, 이것을 받으면 천국의 일등 시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두 은사외에도 25개의 은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고전 12장, 엡 4장). 각 은사마다 교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주시고, 여기에는 우열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께서 어떤 특별한 재능을 선물로 주셔서 그것을 통해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합니다.

3. 일곱가지 은사

여러분 중에 혹시 “나는 은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각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바울이 언급한 7가지 은사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예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설교할 때 너희가 죄없는 자를 십자가에 못받아 죽였다고 지적할 때에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선을 행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혹시 주변의 불의에 맞서 옳은 목소리를 내셨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부당한 일을 보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2) 섬기는 은사
복음서에 들 것에 실려온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왔던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어서 뚫고 들어갈 수 없어서 지붕을 뚫고,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섬기는 은사를 가진 분들의 모습입니다. 교회에는 섬김의 은사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은사는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뒤에서 섬기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한 여제자 다비다(도르가)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옷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 특히 과부와 고아들을 섬겼습니다. 그녀가 죽자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만들어 주었던 옷들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며 울었습니다(행 9:36-39). 이렇게 이름 없이, 조용히 섬기는 사람의 삶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섬기는 분들입니다. 때로 너무 힘이 들어서 ‘이제는 쉬어야겠다’고 생각하시다가, ‘맛있게 식사하는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섬기는 은사를 가지셨습니다.

3) 가르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도록 돕는 능력입니다. 말씀의 진리를 사랑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물론 목회자에게 필수적인 은사이지만, 이 은사는 결코 목회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주일학교 교사, 소그룹 리더, 또는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부모에게도 이 은사가 필요합니다.

4)권위(권면, 격려)  은사
이 은사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여, 다시 일어서게 돕는 능력입니다. 교회에 처음 오셔서 어색해 하는 분이나 삶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분을 보면 먼저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격려의 은사’를 받은 분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그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섰던 청년 사울(바울)이 회심했을 때, 다른 제자들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지만 오직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 안으로 영접하고, 훗날에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 함께 사역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낙심한 마가 요한을 격려하여 다시 사역자로 일으켜 세운 사람입니다(행 9:27, 15:39). 마가복음은 바로 이 마가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권위(격려)의 은사는 한 사람의 사역을 살릴 수 있는 귀한 은사이지만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하고 따뜻이 인사하는 작은 관심에서 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없다면 어떤 분위기가 될지 상상이 되십니까?

5)구제 은사
구제 은사를 가진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보면, 돈이든 시간이든 자신의 것을 기쁘게 내어줍니다.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는 작은 행동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일까지, 주는 것을 통해 오히려 더 큰 기쁨을 얻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의 말씀처럼, 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진리를 삶으로 보여줍니다.

6) 다스림의 은사
공동체를 질서 있게 이끌고 조직하는 능력입니다. 서너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앞에 나와 사람들을 이끌고 조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스리는 은사, 행정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60만 명이 넘는 백성을 이끌며 하나님께 받은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장로를 세우고,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행정과 리더십의 은사는 하나님이 공동체를 질서 있게 세우시기 위해 주신 귀한 도구입니다.

7) 긍휼
긍휼이란 마음에 상처입은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을 향해 깊은 동정심을 느끼고,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은사입니다. ‘누가 어려움을 당했다, 누가 고생을 한다, 누가 병 들었다’하는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 돌봐주고 싶어합니다. 미역국이라고 끓여주며 위로해 주고 싶어합니다. 이 위로의 한마디는 상대방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고후 1:3-4). 그분은 긍휼의 은사를 가진 분들을 통해서 괴로움과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지체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여 교회와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까? 많은 분들이 ‘나는 특별한 은사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평범하게 만드시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작은 재능,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다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기에, 우리도 몸과 마음을 기꺼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단지 ‘나’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십시오. 여기에는 섬기는 은사로 식탁을 채우는 분, 격려의 은사로 상처 입은 이를 위로하는 분, 구제의 은사로 이름 없이 돕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모든 분들이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작은 악기가 모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향곡’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구성에는 바이올린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분이 계시고, 첼로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분도 계십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자를 맞추는 팀파니처럼 든든히 섬기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악기 소리가 각각 다르지만 이를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어 내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옆 사람의 악기를 부러워하거나, 내 악기가 작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악기 소리 그대로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아름답게 사용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지휘에 맞춰 기쁨으로 연주할 때, 우리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님, 제 은사를 깨닫게 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그 은사를 사용하게 하소서.” 그리고 다음 주부터,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십시오. 친교실에서 낯선 얼굴이지만 먼저 말을 걸어보십시오. 환한 미소를 웃어 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작은 행동을 통해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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