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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구원의 신비 (07.27.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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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475회 작성일 Jul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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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7월 27일
본문: 로마서 11:25-36
제목: 구원의 신비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성경 중에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로마서를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특별히 9장부터 11장까지는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그리고 유대인과 다른 민족들(이방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어느 군대 훈련장에서 교관이 새로 들어온 훈련병들에게 호령했습니다. “이 바보들아, 모두 당장 움직여! (you idiots! Move it, now!)” 그러자 한 사람만 빼고는 모두가 이 명령에 따랐습니다. 이 훈련병이 명령을 거부한 태도에 화가 난 교관은 가까이  다가가서 “뭐야?”하며 윽박질렀습니다. 그 젊은 훈련병은 “교관님, 바보들이 정말 많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 군대에서는 이런 분을 가리켜 ‘고문관’이라고 합니다. 대게의 경우 갓 부대에 배치된 이등병이 그렇습니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어리벙벙한 상태에 있기에 놀이감이 되기 쉽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점은 우리 인간의 지혜와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현재 당면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진로 문제 등등으로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하나님의 크고 깊은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여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비밀(25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헬라어로 ‘μυστήριον(뮈스테리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비란, 한때는 감추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알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인해 환히 밝혀진 신비입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우리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한 것처럼,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으로 들어가 그분의 놀라운 지혜 앞에 겸손히 서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주권적이다 (25–27절)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여주는, 즉 ‘하나님의 역사, 곧 구원 역사’를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세상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그분의 목적하신 바를 이루심으로 역사를 마무리하실 분임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십니다.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단순한 한 민족의 역사나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아래 진행되어온 구원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물론 세상에는 때때로 하나님의 통치를 믿기 어렵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진, 허리케인,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능력이 없는 분처럼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큰 목적을 위해 때로는 그 목적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까지도 허락하신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절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그들의 거절을 통해서, 오히려 복음이 이방 민족들에게 전파되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 아래 있습니다. 심지어 욥기 1장과 2장을 보면, 사단(마귀)조차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사단은 큰 능력을 가졌지만 결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악을 만드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악을 허락하시고 다스리시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형들이 악한 마음으로 요셉을 종으로 팔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가 총리가 되어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악한 마음으로 모의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예정된 뜻과 섭리였다고 말씀합니다(행 2:23).

이처럼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며, 그분의 선하고 지혜로운 목적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특히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우리 노년의 성도님들께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지나온 삶 속에서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지 않았던 순간들,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던 시간들, 몸이 약해지고 가족과 작별하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크신 계획과 목적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핵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진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복음으로는 그들이 이방인들 때문에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으로는 조상들 때문에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택하심’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입니다.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완성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계도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시작되어, 이스라엘 역사를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민족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이 임했습니다. 이와같이 이방인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장차 유대인들도 다시 복음을 받아드려서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계획을 정하신 때에 따라 확실하고, 섬세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4절을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때가 차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획은 신뢰하지만, 그 시점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는 언제나 가장 완전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 제국 시대에 시작되었을까요? 왜 다른 시대, 다른 나라는 아닐까요? 사실 로마 제국은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시스템을 로마 제국이 제공했다는 것도 역시 사실입니다. 그들은 아피아 가도라는 훌륭한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세계 대부분을 정복하고 길을 닦아서, 신속히 복음 전파하는데 필요한 교통 시스템을 제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헬라어(그리스어)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세계를 다스렸지만, 언어와 문화는 헬라(그리스)가 로마 제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이 헬라언어로 기록되어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오셨을 때, 언어와 도로가 준비되어서 전세계로 복음이 널리 퍼져나가도록 준비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은 긍휼에 근거한다 (28–32절)

우리는 앞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주권적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구원 계획의 근본적인 바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며 느끼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연약함입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나의 부족함과 실수가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느껴지곤 합니다.
“내가 잘못 산 것은 아닐까?”,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오래 고난 속에 두셨을까?”, “내가 자녀를 잘 못 키운 건 아닐까?”

젊은이들도 고민합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힘든 상황이 계속될까?”,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닐까?”

그런데 만약 우리의 구원도 이렇듯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망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구원과 삶이 우리의 공로나 실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 곧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합니다. 30절과 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는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덕분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지금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자비를 보고 그들도 회개하여 마침내 자비를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씁합니다.

이를 종합해서 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불쌍히 여기심)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죄와 불순종의 상태에 두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때 때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찾아올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가 역사하고 있음을 알기에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구원은 찬양받기에 합당하다 (33–36절)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주권적이고, 또 그 근거가 얼마나 깊은 긍휼에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 앞에서 사도 바울은 경외감에 휩싸여 찬양을 터뜨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마땅히 우리가 찬양해야 할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방법을 생각할 때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 같이 33절과 34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먼저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찬양합니다.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는 능력을, ‘지식’은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성품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음 조차,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 안에서, 다른 민족(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신비로운 계획을 어찌 인간의 좁은 머리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바울의 외침은 인간의 이성으로 다 탐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이를 겸손히 인정하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질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강조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먼저 그에게 주고 보상을 받았느냐?”(34-35절). 이 질문들은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유와 독립성을 강력히 드러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거나 조언할 수 없으며, 그분께 무언가 도움을 드려 보상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는 인간의 공로나 지혜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조금도 기여할 수 없으며, 오직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선언입니다.

마지막 36절에 이르러 바울은 모든 영광의 근원과 목적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에게서 나오고’는 모든 것의 시작이 하나님께 있음을,
  ‘주로 말미암고’는 모든 것을 유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모든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것은 우주 만물의 존재 이유와 과정, 그 최종 결과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안에서 이루어짐을 선언하는 장엄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멘”이라는 외침은 이러한 바울의 신앙 고백에 대한 온전한 동의와 확신을 담고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사실에서 우리 각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대로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진행되고 있으며,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이 진리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첫째로,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지금도 믿지 않는 자녀나 손주, 가족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처럼 완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긍휼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 맡기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의 때에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연약함 속에서도 찬양하십시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자신의 연약함을 실감하고 있습니까? 경쟁 사회에서 지치고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감을 느끼십니까? 경기 불황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찬양할 수 있는 때입니다. 찬양은 반드시 노래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눈 뜨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나님 오늘도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삶, 그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진정한 찬양입니다.

셋째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노년의 삶은 결코 소모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며, 여러분이 자녀 세대와 교회에 신앙의 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손주에게 축복의 말을 해주세요. 자녀를 위해 매일 이름 불러 기도하세요. 전화 한 통, 손으로 보내는 성경구절을 담아 보내는 편지 한 줄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깊은 자비에 경외심을 품고, 그분의 주권적인 손길 아래 신실하게 살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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