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04.20.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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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86회 작성일 Apr 21 2025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4월 20일
본문: 로마서 1: 1-4
제목: 부활의 의미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고전적인 서부영화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마치 총알에 유도장치라도 달린 듯 주인공만을 용케 피해 갑니다. 둘째로, 악인이 일시적으로 득세합니다.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주연만 잘해서는 안됩니다. 조연, 특히 악당 역활이 제대로 살아 있어야 주인공이 더 돋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악인이 압도적으로 우세해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바로 서부영화의 공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부영화를 볼 때 아슬아슬해서 마음을 졸이기는 해도, 주인공이 죽을까 봐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비극과 재앙을 겪고, 의인이 고통과 눈물을 흘리며,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지만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역사의 종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의가 불의를 이길 것입니다. 죄와 사망은 불못에 던져지고, 우리는 새하늘과 새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바둑에서 상대방의 수를 모두 읽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고스톱에서 상대방의 패를 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역사의 종말을 알고 있기에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그날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될 것을 믿었습니다. 모든 저주와 질병이 끝이 나고, 생명과 평화가 충만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든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영원전부터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아침,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줍니다.
둘째, 부활은 우리의 장래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셋째, 부활은 오늘 우리의 삶에 능력이 됩니다.
1.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우리가 받은 구원이 확실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죽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분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후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혹시 예수님도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왜 부활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분을 사망이 붙잡아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또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자신이 죄가 없는 하나님 아들이신 것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흘리신 피로 내가 용서 받았고, 내 죄가 깨끗하게 처리 되었으며, 나는 속량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의 감정이나 선행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여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2.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장래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은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음을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별 의미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언제가 나도 죽게 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될 때, 예수님의 부활은 놀라운 소망과 기쁨의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은 누구에나 예외 없이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이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노후를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헛수고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건강식으로 먹고, 비타민도 복용하고, 운동하는데 정작 죽음 자체는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날 그 순간에 얼마나 두렵고 당황하게 될까요? 우리는 장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우리 영혼의 미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며,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우리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미래를 누가 보증해 줄 수 있을까요? 목사일까요? 믿는 좋은 아내, 남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것을 보증해 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실한 보증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첫 열매란 추수할 때 가장 먼저 거두는 열매를 말합니다. 앞으로 수확할 모든 열매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첫 열매는 나머지 모든 열매에 대한 보증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그 뒤를 따라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한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고통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고, 나도 그분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믿기에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 부활 신앙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는 확실한 보증이 있는 약속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3.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현재에 대한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사건으로, 미래의 소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은 오늘 우리 삶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한 노인 성도는 부활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오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능력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일저녁,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뭘 배웠니? 예배는 어땠니?” 막내가 대답합니다. “아주 즐거웠어요.” “자, 그러면 하나님께 각자 돌아가면서 감사기도하자.” 그래서 막내가 감사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가 너무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하나님도 거기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요.”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예배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다면 그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순간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래, 주님은 살아계시다!”그리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예배당을 나설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능력을 갖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 중에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또 에베소서 1장 20절은 말합니다.
“그(부활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평범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부활의 능력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받은 그들은 즉시 세상에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이 온 세상을 뒤집으며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오늘 이 시간에도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문제를 해결합니다. 좌절과 낙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움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정죄의식에서 해방되고 죄의 유혹과 충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현재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사회, 국가와 민족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과거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 줍니다. 장래의 천국을 보증해 줍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능력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아직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이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아 계시며,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부활 능력을 오늘 내 삶 속에서 경험하십시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오늘도 만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날짜: 2025년 4월 20일
본문: 로마서 1: 1-4
제목: 부활의 의미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고전적인 서부영화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마치 총알에 유도장치라도 달린 듯 주인공만을 용케 피해 갑니다. 둘째로, 악인이 일시적으로 득세합니다.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주연만 잘해서는 안됩니다. 조연, 특히 악당 역활이 제대로 살아 있어야 주인공이 더 돋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악인이 압도적으로 우세해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바로 서부영화의 공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부영화를 볼 때 아슬아슬해서 마음을 졸이기는 해도, 주인공이 죽을까 봐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비극과 재앙을 겪고, 의인이 고통과 눈물을 흘리며,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지만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역사의 종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의가 불의를 이길 것입니다. 죄와 사망은 불못에 던져지고, 우리는 새하늘과 새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바둑에서 상대방의 수를 모두 읽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고스톱에서 상대방의 패를 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역사의 종말을 알고 있기에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그날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될 것을 믿었습니다. 모든 저주와 질병이 끝이 나고, 생명과 평화가 충만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든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창세 전부터, 영원전부터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아침,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줍니다.
둘째, 부활은 우리의 장래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셋째, 부활은 오늘 우리의 삶에 능력이 됩니다.
1.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우리가 받은 구원이 확실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죽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분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후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혹시 예수님도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왜 부활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분을 사망이 붙잡아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또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자신이 죄가 없는 하나님 아들이신 것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흘리신 피로 내가 용서 받았고, 내 죄가 깨끗하게 처리 되었으며, 나는 속량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의 감정이나 선행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여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2.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장래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은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음을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별 의미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언제가 나도 죽게 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될 때, 예수님의 부활은 놀라운 소망과 기쁨의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은 누구에나 예외 없이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이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노후를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헛수고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건강식으로 먹고, 비타민도 복용하고, 운동하는데 정작 죽음 자체는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날 그 순간에 얼마나 두렵고 당황하게 될까요? 우리는 장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우리 영혼의 미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며,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우리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미래를 누가 보증해 줄 수 있을까요? 목사일까요? 믿는 좋은 아내, 남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것을 보증해 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실한 보증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첫 열매란 추수할 때 가장 먼저 거두는 열매를 말합니다. 앞으로 수확할 모든 열매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첫 열매는 나머지 모든 열매에 대한 보증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그 뒤를 따라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한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고통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고, 나도 그분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믿기에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 부활 신앙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는 확실한 보증이 있는 약속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3.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현재에 대한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사건으로, 미래의 소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은 오늘 우리 삶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한 노인 성도는 부활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오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능력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일저녁,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뭘 배웠니? 예배는 어땠니?” 막내가 대답합니다. “아주 즐거웠어요.” “자, 그러면 하나님께 각자 돌아가면서 감사기도하자.” 그래서 막내가 감사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가 너무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하나님도 거기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요.”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예배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다면 그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순간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래, 주님은 살아계시다!”그리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예배당을 나설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능력을 갖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 중에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또 에베소서 1장 20절은 말합니다.
“그(부활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평범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부활의 능력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받은 그들은 즉시 세상에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이 온 세상을 뒤집으며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오늘 이 시간에도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문제를 해결합니다. 좌절과 낙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움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정죄의식에서 해방되고 죄의 유혹과 충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현재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사회, 국가와 민족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과거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 줍니다. 장래의 천국을 보증해 줍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능력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아직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이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아 계시며,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부활 능력을 오늘 내 삶 속에서 경험하십시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오늘도 만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관련링크
- https://youtu.be/RFXU_Ff_K_U 20회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