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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 (03.23.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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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70회 작성일 Mar 24 2025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3월 23일
본문: 하박국 3:1-16
제목: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현재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늘 우리는 '과거'를 함께 바라보려 합니다. 언뜻 보기엔 과거와 현재는 무관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제대로 기억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오늘을 바르게 살 수 있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과거의 은혜와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과 내일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자 힘이 됩니다.

2024년, 한국 문학계에 한 획을 긋는 뜻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인간 존재의 고통과 기억, 그리고 연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 속에 담아 왔습니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당시의 참혹한 현실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고요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단지 문학적 상상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실존적 물음입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외면한 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잊어 버리면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고통의 기억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현재가 치유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를 외면하면 우리는 그 고통과 실패를 반복하게 되고, 반대로 그 기억을 직면할 때에야 비로소 삶의 회복이 가능하다.”이 말은 문학을 넘어, 인간 삶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통찰은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과도 연결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반복하게 된다.” 즉,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과 공동체,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 온 어리석음과 고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신앙의 여정을 걷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여러분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 기억은 오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성경은 수없이 반복해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기억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이 명령은 단순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당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역사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출애굽의 기적, 광야에서의 인도하심, 때로는 불순종 속에서도 베풀어진 은혜…그 모든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기억은 곧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합니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이며 신앙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한 개인, 한 공동체의 영혼이며, 신앙도 결국 과거에 대한 해석과 신뢰 위에 세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 (신 6:12)

신앙의 위기는 믿음의 약화로 표현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기억의 상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쉽게 두려움과 죄, 절망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도, 가나안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을 때도, 그 시작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기억하고 있습니까? 내가 받은 은혜, 회복의 순간들, 눈물로 기도하던 밤, 그때 들려온 하나님 말씀, 응답받은 기도들…그 모든 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리는 생명의 기록입니다.

신앙인은 앞만 보고 달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멈춰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남은 하나님의 흔적을 찾습니다. 그 기억 위에 다시 서서 고백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 속에서 그런 거룩한 기억의 여정을 만나려 합니다. 하박국이 처한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죄악에 빠져 있고, 그 결과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이 눈 앞에 두고 있던 상황이라서 사람들은 혼란과 혼동, 두려움과 공포심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 하박국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하박국 3장 1–16절, 이 찬송시에서 선지자는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의 과거를 기억하고 노래합니다. 자연과 역사를 뒤흔들며 일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산이 흔들렸고, 물이 갈라졌으며, 해와 달도 멈추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억이야말로, 현재의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믿음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도 함께 묵상하며, 기억이 어떻게 신앙을 세우는가, 그 기억이 어떻게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하박국의 기도와 찬양 (3:1-2)

하박국 3장은 선지자의 기도로 시작됩니다. "시기오놋"이라는 노래 형식을 따라 드려지는 이 기도는 단순한 탄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에서 나온 찬양입니다.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고,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그 은혜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박국 3:2에서 그 핵심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박국의 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바벨론은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고, 유다 백성은 여전히 죄악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은 절망적인 현실에만 매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신 구원과 심판의 역사, 은혜의 사건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그 일이 ‘이 수년 내’에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 지금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미래의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소원의 나열이 아닙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 역사를 기억하고,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오늘도 역사하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며,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그 성품에 근거해서 오늘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도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홍해 앞에서 절망했습니다. 그 앞은 바다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급히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바다를 가르셨고, 그들은 마른 땅을 걸어 나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에도, 그들은 수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며 믿음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자신의 성품 때문에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박국이 붙잡았던 기억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기반입니다.

하박국의 기도처럼, 우리의 삶에도 고난과 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현실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과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셨는지, 어떤 기적을 경험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는지 떠올려 보세요. 질병이나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인도하심을 기억해 보세요. 그리고 그분의 신실하신 성품을 붙잡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오늘의 문제를 대면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박국은 “이 수년 내에 부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듯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부흥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이 땅에서 하실 큰 일을 기대하며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과거의 역사를 믿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우리 시대에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을 기억하라 (3:3-7)

하박국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시적인 이미지로 회상합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3절)

‘데만’과 ‘바란’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된 광야 지명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셨고, 율법을 주시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장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초월해 계신 분이시지만, 역사의 현장에도 직접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가 온 천하에 충만합니다. 3절 후반절,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온 세상이 떨 수밖에 없는 권능의 실체입니다. (합 3:4-5)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온역(역병)’과 ‘불덩이’는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렸던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고, 악을 무너뜨리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6절과 7절에 나오는 ‘산이 무너지고, 민족들이 떨며, 장막이 흔들리는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권세와 체제와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생생히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돈과 재물, 권력, 건강, 인간관계, 계획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발걸음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것들입니다.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 성경 속에서는 하나님이 개입하셨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신 것 같아. 왜 내 삶에는 그런 개입이 없을까?”

그런데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아니, 어쩌면 더 깊고, 더 인격적이며, 더 섬세한 방식으로 우리 삶 속에 개입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은 한 사람의 회심을 통해서 한 가정을 송두리채 변화시키시고,
• 절망 가운데 있던 이에게 말씀을 통해 소망을 주시며,
• 기도 중에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 눈물로 드린 예배 가운데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위기의 한복판이 아니었나요? 우리 인생에도 수많은 ‘데만’과 ‘바란’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알 수 없는 시기, 앞이 보이지 않던 날들, 기도해도 응답이 없던 그 밤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순간에도 이미 개입하고 계셨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의 현장에서 신실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신뢰하라 (3:8-15)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고 물들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강들을 노여워하시며, 바다를 향하여 분노하심이니까?” (3:8)
하박국은 질문 형식으로 하나님께 묻고 있지만, 그 속에는 깊은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말을 타시고 병거를 몰고 오신다”는 표현은 고대 전쟁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의 왕이시며 공의의 전사로 역사 가운데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이 심판은 무분별한 분노가 아니라, 죄악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진노입니다.

하나님께서 물과 강과 바다를 향해 분노하신다는 이 표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개입—공의와 구원을 위한 능동적인 역사—를 나타냅니다. 노아의 시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이 죄로 가득하자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끝났을 때, 그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고 거룩한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방주를 통해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박국이 묘사하는 물의 이미지—바다, 강, 하수—는 이러한 노아의 홍수를 은유적으로 상기시킵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중적 역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3:9)

이 구절은 출애굽 사건, 특히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바다를 마른 땅처럼 만들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억압자에게는 심판으로, 고난받는 자에게는 구원으로 나타납니다. 동일한 사건이 누구에게는 멸망이 되고, 누구에게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3:11)

하늘의 해와 달이 그 자리에서 멈추는 이 기이한 광경은 여호수아 10장을 연상시킵니다. 이스라엘이 다섯 나라의 연합군과 싸우던 아얄론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해여,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해와 달을 멈추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연의 질서조차 멈추게 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하박국은 지금 그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며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하늘 높은 곳에서만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의 전쟁터 한가운데에 개입하셔서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심판’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복을 위한 정화이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거룩한 행위입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3:13)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악이 제거되어야 의인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의롭게 개입하십니다. 하박국은 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가 결국은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며, 그래서 심판조차 소망의 노래가 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6절을 이해기 쉽게 번역해 보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내 창자는 무서워 뒤틀리고 내 입술은 그 소리에 떨렸습니다. 내 뼈가 속으로 썩어 들어가고 내 아랫도리의 발이 덜덜 떨렸습니다. 나는 우리를 공격한 그 백성이 곤경을 겪을 그 때를 참고 기다릴 것입니다.”

하박국의 마음이 얼마나 떨렸는지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니, 내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립니다. 내 뼈가 썩어 들어가고, 두 발이 덜덜 떨립니다. 여기서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 속에서도 “그 때를 참고 기다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참고 기다린다’는 말은 패배적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의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현재의 고난 앞에서도 인내하고자 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도 삶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억울함과 불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와 눈물의 밤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며 심판하실 날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공의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인내하며 그 때를 기다립니다. 과거가 현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마주하는 고난과 혼란은 때로 우리의 신앙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그분의 구속의 역사를 기억할 때, 우리는 오늘을 살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으니,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고백하며, 과거의 구원이 현재의 믿음이 되게 했습니다(삼상 17:37).

모세는 홍해 앞에서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그는 애굽에서 10가지 재앙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기억했고, 그 믿음은 또 한 번 바다를 가르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에스더는 민족의 생사가 걸린 순간, 자신이 왕후가 된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믿고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에 4:14). 과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현재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하라. 돌아보라. 그리고 믿으라.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자만이, 현재의 위기 앞에서도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여기 연로하신 어르신 여러분, 여러분은 시대의 고난을 몸으로 살아낸 세대입니다. 일제의 압제와 한국 전쟁의 상처, 가난의 시절, 민주화의 고통, 그리고 이민 온 후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그 긴 밤들.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 기억 위에 서 있습니다.

젊은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되고 있고, 모든 게 불안정하여 장래가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처럼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신 흔적을 찾으십시오. 그 기억이 오늘의 믿음을 살립니다.

하박국은 무너진 현실을 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그는 현실의 결핍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이 믿음의 고백은, 단단한 ‘기억’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기억의 신앙’입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지 감상이나 추억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는 힘이며, 내일을 향한 소망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다시 찬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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