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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파수꾼의 기다림 (03.02.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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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242회 작성일 Mar 03 2025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3월 2일
본문: 하박국 2: 1-3
제목: 파수꾼의 기다림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혹독히 추운 겨울밤, 갓 입대한 군인이 처음으로 초소에서 불침번을 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차가운 바람은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고, 사방은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피곤함은 더해지고, 추위는 더욱 매서워지지만 그는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며, 어둠 속에서 모든 위험을 감지하려 합니다.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속히 새벽이 오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이 아무리 길어도, 동이 트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입니다.

아마 군대에 갔다오신 분이라면 이 느낌과 분위기를 충분히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긴긴 밤을 지나고 어서 속히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파수꾼의 심정이 지금 하박국 선지자의 심정과도 비슷합니다. 하박국은 혼란과 불의가 가득한 시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세상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은 불평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치 파수꾼처럼 망루에 올라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시편 130편은 이런 기다림에 대해 잘 보여줍니다. (시 130:5-6)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기다림이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인내하는 마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신앙의 중요한 요소이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며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참을성 없는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조급성과 권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원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워합니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거나 흥미를 잃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쉽게 지칩니다. 현대 사회에서 기다림은 매우 인기가 없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해! 더 빨리 해!”라고 들으며, 무언가 성과가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기다리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안 깊은 곳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때문입니다.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다림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이 생깁니다. 두려움 속에서 더 안전하고 편한 곳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을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언제,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다림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기다림은 그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우리의 기다림이 힘든 것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의 전환기적 불안과 극단적 양극화의 시대적 상황이 점점 기다림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 혁명으로 인한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뢰를 주지만, 동시에 산업 구조의 개편과 일자리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안정성과 또 정치적 갈등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정보의 홍수는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회적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특히 이민자들에게는 더 큰 고통을 주고, 더 큰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기존의 삶의 터전을 떠나와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이어가는 것조차 만만치 않았는데 더 어려운 환경이 되고, 미래 마저 불투명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세가 많은 분들은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가 갈수록 절실히 피부에 와닿습니다(하루 스케줄이 Dr’appoinment 중심으로 짜집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자신이 꿈꾸며 원하는 삶을 과연 이 미국 땅에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힘든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며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처럼, 불확실한 시대를 살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과 구원을 기다리는 신앙적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이 신앙적 기다림이 불안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끊임없이 기다림을 경험합니다. 어린아이는 성장하기를, 학생은 졸업을, 직장인은 승진을 기다리며, 농부는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립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삶의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불안과 조급함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다림이 신앙의 핵심임을 가르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그분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파수꾼이 성루에 서서 깨어 있는 자세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신앙의 기다림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깊이 가르쳐줍니다.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고 말합니다(1절). 이 표현은 군사적인 의미를 가지며, 파수꾼이 적의 움직임을 살피며 깨어 있는 자세를 나타냅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주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파수꾼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에스겔 3장과 33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며 그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겔 3:17-19)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선지자는 파수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이를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선지자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전하는 임무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악인에게 경고하였는데 회개하지 아니하고 죽으면 그 피 값을 에스겔에게서 찾지 아니할 것이지만, 만약 경고하지 않고 그가 죄악 중에 죽으면 그 피 값을 에스겔에게 찾을 것이다.’ 여기에 아주 파수꾼 역할의 엄중함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은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경고와 준비를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그 분의 때를 기다리고, 말씀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기다림 속에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기다림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후 25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75세가 된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식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자녀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렸고, 결국 100세가 되어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창 21:5).

요셉은 어린 시절,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형들의 질투로 인해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보여주신 꿈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105:18) “그 발이 작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한 마디로 혼절이 나간 상태로 끌려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언제까지 겪습니까? (시 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성취하기 까지 혹독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13년 동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훈련받았습니다. 그의 나이 40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자 자신의 방식으로 행동하다가 살인죄로 도망쳐 그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의 기다림은 모세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지는 시간이요, 자신의 무능과 무력감을 철저히 실감하는 시간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분의 뜻에 손복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다림 속에서 인내의 미덕을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다림이 지루하고 어려운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로마서 5:3-4에서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기다림은 우리가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기다림은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박국은 처음에는 절망과 의문으로 가득 찼지만, 결국 신앙의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그 신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박국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에서 후퇴하지 않고, 더 이상 미끌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2. 기다림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적 기다림은 막연하게 희망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다림입니다.

2절에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묵시를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하라”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묵시’입니다. 묵시는 하나님의 예언적 메시지 말씀이나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진리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묵시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판에 명백히 새기라”는 것은 말씀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새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강조하였듯이,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가 빠르게 확실하게 전파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당혹스럽고 믿기가 어렵지만, 하나님은 이를 모든 이들에게 명명백백하게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 비로소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보고 깨닫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의 기다림과 소망의 근거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기에 우리는 소망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의 소원과 다릅니다. 소원(所願, Wish)은 주로 인간의 개인적인 바람과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건강하게 해 주세요”, “좋은 직장을 얻게 해 주세요”와 같은 기도는 소원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는 특정한 목적이나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결과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띠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원은 확신이나 평안을 경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소망(所望, Hope)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약속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다리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천국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의 소망”은 우리의 개인적인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실한 믿음입니다. 성경은 소망을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확신에 찬 믿음에서 나옵니다.
•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됨이니”
•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오늘날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문제, 외로움의 고통 등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사람이나 어떤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다릴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 13:5)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 (이사야 40:31)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이러한 말씀들을 붙잡고 기다릴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때가 올 것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하박국 2:2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묵시를 명백히 기록된 약속으로 삼고, 그 말씀에 소망을 두며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3.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이 묵시의 말씀은 앞으로 전개될 유다 왕국의 역사에 관한 예언적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하박국이 살던 시대는 사회적 혼란과 불의가 넘쳐났던 시기였습니다. 불의가 강성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서 속히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하박국 선지자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해서 유다백성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유대 백성들이 부분적으로 손을 봐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총체적으로 타락했고 부패했기에 완전히 뒤엎어야 할 상태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제국이 유다 왕국을 뒤집어 엎을 것입니다. 아주 당혹스럽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을 들어서 유다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지만 바벨론 제국이 더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을 단련시키기 위해 채찍으로 사용하실 것이지만 일회용입니다. 사용하신 후 용도 폐기처분하실 것입니다. 즉 바벨론 제국도 신속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유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후 역사에서 그대로 성취됨니다. 바벨론은 메데바사(페르시아) 국가에게 멸망을 당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던 유다 백성은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ㅇ에 의해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메시아가 오실 것을 구약성경에서 수천 년간 예언 되었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4에서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한 예언의 말씀으로 그날을 소망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우리는 기다림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때때로 응답이 더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이 강조했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비록 지금은 어려움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우리는 그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약속의 붙잡고 나아갑시다.

결론: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 것인가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신앙적 기다림이란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준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1)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십시오.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2)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십시오. 혼자 기다리면 지칠 수 있습니다. 낙담하여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서로를 세워 나가십시오.

  3)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박국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기다리고,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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