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로 올라가라 (02.26.2023)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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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02.26.20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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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597회 작성일 Apr 23 2023

본문


*날짜: 2023년 2월 26일
*제목: 벧엘로 올라가라 (창세기강해 야곱의 귀향편 6)
*본문: 창세기 35: 1-15
*설교자: 이강웅 목사


본문: 창세기 34:1-15

서론: 우리가 지난 주일 말씀을 들었던 창세기 34장에 대해 어느 성경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34장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지저분한 장 가운데 하나다. 이는 강간, 분노, 속임, 탐욕, 살인, 폭력, 불손과 불경스러움, 그리고 자기중심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그래서 34장 전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창세기 저자는 야곱에게 일어난 비극의 소용돌이에 대해 누구의 잘못인지, 어디가 잘못되었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담담히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토리의 문맥 흐름을 쫓아서 행간 사이에 숨어 있는 저자의 의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창세기 저자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야곱의 행보에 대해서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일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야곱의 모든 일이 다 잘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도 잘 풀렸습니다. 이 모든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온 이후 10 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약속했던 서원을 갚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세겜에서 정착하는 일에 집중하였던 같습니다. 오늘날 식으로 표현한다면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문화가 발달 되고, 자녀 교육 시키기에 적합한 듯 보였던 세겜에 뿌리 내리려고 했습니다. 순조롭게 일이 잘 풀리고, 잘되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영적 태만과 안일에 빠졌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이전처럼 다시 평온한 일상생활입니다. 그런데 내적으로 보면 점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보통 죄는 이렇게 영적으로 태만해 지고, 안일할 때 일어납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어 평온했을 때, 그는 안일과 태만에 빠졌을 때입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유흥을 즐겼던 그는 다음날 오후까지 늦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던 밧세바를 보고 음욕에 사로잡혀 간음죄를 짓습니다. 그후 완전 범죄를 꾀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전선 제일 앞에 두어 죽게 했습니다.

비록 눈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지만 이후 그의 집에 칼날이 떠나지 않습니다. 자녀들 간에 강간 사건이 일어나고,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나중에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꾀하여 다윗이 긴급히 도주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런 일련의 재앙이 어디서 부터 시작됩니까? 겉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어 아주 평온해 보일 때, 그런데 안으로 영적 태만과 안일에 빠질 때 사단은 이를 기회로 삼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안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야곱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어디서 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 지를 알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 그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야곱이 어떻게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깨닫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히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합니다.

1. 옛사람이 남아 있는 야곱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마하나임(32:1-2)에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32:30) ‘이스라엘’이라는 새이름을 받았던 야곱이었지만 그 후에 그가 보여준 행보는 여전히 옛사람 야곱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그는 세겜에서 잘 정착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맹세를 지키지 않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습니다. 더 이상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안일과 편안함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은 여생을 계속 살게 될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간섭없이 사는 인생이 얼마나 위태한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간과한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열심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확보할 줄로 알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거나 만족을 얻었을 때, 간절한 필요가 채워졌을 때, 오히려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나면 긴장이 풀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왔던 약속이나 다짐을 잊어버립니다. 그동안 굳게 붙들고 있었던 각오나 결심에서 벗어나기 쉽니다. 그래서 쉽사리 불순종이나 실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지금 야곱도 그런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극의 소용돌이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전혀 영적이지 못했습니다. 딸의 성폭행 사실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그저 잠잠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이 세겜성을 살육하고 약탈했다는 소식에 야곱은 기겁을 합니다. 34장 30절입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여기 구절에서 어떤 단어가 반복됩니까? 전부 ‘나, 나, 나’입니다. 이 비극의 소식을 듣고서 하나님 앞에서 ‘이 얼마나 큰 죄악이냐’고 자신의 옷을 찢으며 통회하는 것이 아니라, ‘니들이 이렇게 해서 내가 큰일나게 생겼다. 우리 집안이 망하게 됐다.’라고 아들들 탓을 합니다. ‘이제 주변 가나안족속들이 소식을 듣고서 필경 합세해서 공격해 올 텐데 어떡하냐’라고 두려워하며 아들들을 비난하자 아들들이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31절)

벌써 장성한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불손하게 대꾸하고 있습니다. 이 광경은 그동안 가정에서도 야곱이 본이 되지 못하였고, 영적으로 태만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의 영적 리더십은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도 추락했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그의 옛성품이 뿌린 그대로 이제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처방

사람들은 비극적인 일을 만나면 보통 ‘왜?’라고 묻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야곱도 그랬을 것입니다. ‘내가 세겜에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오래 머물지 말고 떠났어야 하는데, 디나가 세겜의 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 때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일을 제대로 처리했어야 했는데…’등등

사실 이런 질문들은 문제 해결하는데 있어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질문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아갈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사실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는 일은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있어야 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옛적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서원했었는데, 그동안 하나님은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동안 야곱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알고도 미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그를 일깨워주십니다.

그것은 그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또 다른 꾀를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야곱이 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것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배 드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하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하나님은 왜 위급한 때에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벧엘이 어떤 곳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0년 전 그가 하란으로 도망치던 중에 야곱은 벧엘이라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해 주는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그리고 하란에서 20년,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10년을 보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서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은 그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를 지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믿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5장에서 하나님에 대해 긴 수식어를 붙여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어떤 하나님입니까?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 둘째로, 3절에서는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라고 야곱이 말합니다.

‘내가 누구냐?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지금까지 네가 경험한 것이 무엇이냐?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느냐?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이냐? 너는 왜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느냐? 너는 나를 기억하고 신뢰하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나를 예배하여라.’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벧엘의 하나님이 지금까지 야곱과 함께 하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지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앞으로도 그와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야곱이 실패를 경험했고, 낙심할 수 있었지만, 생명의 위협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러할지라도 지금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벧엘로 올라가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던 적,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했던 적, 하나님이 정말 약속에 신실하시구나! 나의 삶에 함께 하시는 구나! 경험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한 번의 경험이 다른 모든 날을 벧엘처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벧엘을 기억하며 또 다른 벧엘을 기대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거하는 곳이 어디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경험하는 벧엘로 만들 수 있습니다.

3. 야곱의 순종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 올라가 기 전에 무엇을 먼저 했습니까? 그가 한 일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을 모아두고 말합니다. (35:2)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은 세 가지를 명령합니다. 첫째로,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 둘째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셋째로,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첫째, 야곱은 집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상을 버리도록 했습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의 집안에는 하나님외에 다른 우상들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야곱은 먼저 이것을 모두 없애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시고 참된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오직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것,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우리가 따로 목욕하거나 옷을 입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합당한 자세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 방해 요소가 되는 것이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일을 아직도 붙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 이외 또 다른 예배의 대상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마음이 나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빼앗아가는 우상을 버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죄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삶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입니다.

4. 하나님의 응답

이렇게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길을 떠날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은 그들이 연합하여 칠까 두려워했는데 그들이 오히려 야곱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때에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적들 앞에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십니다.

5. 하나님의 축복

그리고 야곱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복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복은 야곱의 바뀐 이름입니다(9-10절).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음을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바뀐 그 이름을 다시 언급하신 것은, 야곱이 앞으로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며 또 마땅히 그렇게 되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야곱’ 즉 남의 뒤꿈치를 잡는 사람, 비열한 사람, 속이는 사람, 사기꾼의 삶을 이제 살아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사람, 특히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복은 자손의 번성입니다. (1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그리고 세 번째 복은 땅의 약속입니다. (12-13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즉,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이름과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도 세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12:1-3).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할 것이라,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즉 이름과 땅과 자손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도 이 세 가지 약속을 여기서 다시 반복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은 항상 새로워질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약속을 받았다고 계속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항상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변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늘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덕스럽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성향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에 가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언약을 늘 새롭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벧엘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무력하며 낮은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거기서 야곱을 만나시고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엄청난 약속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낮은 그 자리에서 가장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날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처참했던 자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 나의 벧엘입니다. 그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오.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십시오.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 모든 삶 가운데 역사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나아가 모든 지혜의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능력의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자비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에 합당치 않은 것들을 버리고, 내 마음에 있는 죄악을 떨쳐버리고, 회개함으로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세겜에 있든지, 아니면 세겜과 벧엘 사이 어딘가에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세겜에서 엄청난 비극을 경험했든지, 아님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든지 관계없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하나님의 집, 벧엘입니다. 일어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벧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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