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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주일예배

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일곱 가지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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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202회 작성일 Oct 14 2024

본문


본문: 요한계시록 6:1-17

미국 땅이 워낙 넓다보니 서부에 사는 우리는 뉴스를 보지 않으면 동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미국 남동부는 자주 폭우와 강풍을 동반하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큰 슬픔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허리케인 밀턴이 풀로리다를 강타해서 사람이 죽고, 도시가 침수하고 정전 피해를 보았습니다. 예전 보다 더 빈번하게 더 강력한 천재지변을 겪는 것 같아서 모두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볼 때 마다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반면에 허리케인, 토네이도, 지진, 홍수, 화재, 기근, 유행병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죽고, 재산 피해를 입는 비극적 소식을 접할 때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신가’하고 의문을 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과 환경오염, 마약과 총기사고, 부정과 불의, 도덕적 영적 타락 등등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신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소아암병동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이 입원해 있습니다. 다른 병동에서는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엄마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잘 믿는 성도가 술취한 운전자의 과실로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부딪히거나 소식을 듣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 분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 뿐만 아니라 고대로 부터 신의 부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신은 악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능력도 있고, 없애려고도 하는가? 그렇다면 악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는 능력도 없고,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를 신이라 부르는가?

이런 논리로 저들은 신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합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악과 죄의 존재, 이로 인한 인간의 고난과 고통, 불행과 죽음의 현실 속에서 과연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하고 묻습니다. 우리 눈에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결코 아무런 목표나 목적없이, 어떤 통제도 없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가 질주하는 것처럼, 예측 불가능하게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4장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5장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 드리는 천상 예배 광경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과 역사와 종말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역사의 주권자가 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고난과 고통, 심지어 불행과 죽음이라할지라도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 들린 두루마리의 인을 떼서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루마리 책은 하늘의 비밀, 역사의 비밀, 미래의 비밀이기 때문에 함부로 공개될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했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그만큼 엄중하게 비밀문서로 취급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오직 우리를 피로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봉인을 떼고 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부터 시작되는 계시록 6장 부터 16장까지는 그 두루마리에 적힌 심판과 재앙에 관한 기록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심판 시리즈가 등장합니다.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 일곱 나팔에 담긴 심판,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6장과 8장에서는 첫 번째 심판 시리즈로서 일곱 인을 땔 때마다 각각 재앙이 임하는데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피할 수 없이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심판 시리즈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 일 후에’ 또는 ‘내가 보니’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된 사건들이 마치 ‘시간적 흐름, 역사적 순서’따라 기록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 학자들은 각각 일곱 시리즈로 구성되어있는 인 심판, 나팔 심판, 그리고 대접 심판은 시간적 순서의 개념이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단순히 직선적으로 진행하는 순서로 쓰였다기 보다는 반복의 원리에 의해 쓰였다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심판의 강도가 심화되고 확장되는 나선형 구조를 가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심판의 강도가 점점 더 강화되어 갑니다, 다시 말하면 인 심판 시리즈보다 나팔 심판 시리즈가, 나팔 시리즈보다는 대접 심판 시리즈가 점층적으로 그 심판의 강도가 심화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심판은 결국 바벨론의 멸망(계 17:1-19:10)과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처럼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것으로(계 21:9-22:5) 최종적인 성취에 도달하게 됩니다.

1. 첫째 인

1절에서 어린 양 예수께서 일곱 인 중 하나를 떼시는데 이것은 역사의 종말의 비밀을 어린 양 예수의 권한 아래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서 5장 3절에서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는 말씀을 통해 그 누구도 뗄 수 없는 종말의 비밀을 어린 양 자신이 떼심으로 역사와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체는 바로 예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인을 떼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절을 보면 흰 말이 나타났습니다. 그 말을 탄 자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는데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보통 흰색은 ‘성결하다, 깨끗하다’는 것을 상징하거나 정복과 승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는 표현은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는데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 자는 누구일까요? 아니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복음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교회와 복음에 대한 적대적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세상에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교회는 이교도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여 승리하는 능력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무서운 핍박과 박해에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고, 복음은 묶이지 않았습니다. 장래에도 교회와 복음은 계속 이기고 또 이기게 될 것입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로마 제국이나 로마의 황제를 대표하는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저들은 거짓 평화를 약속하면서 세상을 압도합니다. 로마 황제들은 입으로는 팍스 로마나, 로마에 의한 평화를 부르짖었습니다. 로마가 중심이 되어서 온 세계를 평화롭게 통치하겠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마중심의 평화요, 로마인을 위한 평화였습니다. 이 평화는 무력으로 상대방을 철저히 짓밟아 버린 후 얻어지는 강요된 평화입니다.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는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성경은 말세에 평화를 가장하는 거짓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고, 그 정점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인

둘째 인을 떼니까 붉은 말이 나왔습니다(4절). 붉은 말이 나와서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이것은 대대적인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전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습니까? 20세기 들어서만 세계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아프가니스탄 전, 걸프전, 이라크 침공, 현재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진행 중입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국경을 기습 공격해서 시작 된 지 일년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측은 1,200명이 사망하였고, 팔레스타인은 3만 2623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여성들과 아동들입니다.

그런데 각 인을 뗄 때마다 재앙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 모두 일이 그리스도의 주권과 통제 아래 있고, 주님이 허락하셔야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고, 역사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3. 셋째 인

5절에 셋째 인을 떼실 때에 검은 말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말에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는데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하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군 하루 품삯인데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 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필품과 물가의 폭등으로 평소 보다 여덟 배 이상으로 비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근 때문에 엄청난 인플레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 후반절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고 합니다. 감람유를 생산하는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는 둘 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웬만한 가뭄 속에서도 쉽게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근 속에서도 최소한 굶어 죽지 않도록 대체 식물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기근 가운데 여전히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넷째 인

7절, 넷째 인을 떼니까 이번에는 청황색 말이 나왔습니다. 청황색은 시체 색깔이요, 죽음의 색깔이요, 온역의 색깔입니다. 그 말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이것은 청황색 말이 가는 곳에 각종 전쟁과 테러, 자연 재해와 전염병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서 심판의 도구로 전쟁과 기근이 사용되었다면, 네 번째에는 전쟁과 기근과 함께 역병과 짐승을 추가로 언급함으로 심판의 강도가 앞서보다 훨씬 강화되고 구체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세 때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역병이 다시는 창궐하지 못하도록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002년 사쓰(SARS), 2012년 메르스(MARS), 또 2019년 코로나 19(COVID-19). 작년에 발표된 통계를 보니까 전 세계적으로 대략 700만명이 죽었고, 미국은 1백2십만명이 죽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전염병이 더 빠른 주기로, 더 강력한 것으로 올 것이라 하니 불안하지 않습니까?

이뿐만 아닙니다. 8절에 나오는 ‘땅의 짐승들’이란 어두움의 세력으로 부터 권세를 받은 독재자들, 히틀러, 스탈린과 모택동, 김일성과 김정일 등등 이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죽였습니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24:7-2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마 24: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아직 끝은 아닙니다.

5. 다섯째 인

다섯째 인을 떼자 어떤 일이 전개 됩니까?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한 자들이 제단 앞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에 대한 호소입니까?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그들은 하나님을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로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은 악인들을 심판하셔서 자신들의 피를 갚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주여, 우리의 억울한 피를 언제나 갚아 주시렵니까?” 순교자들의 이러한 호소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의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공의로 악인들을 심판하여 주시기를 탄원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도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입니다. 그래서 불의를 눈감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면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은 심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 대한 구원에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리를 입혀 주셨습니다. 순결하고 깨끗한, 그리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너는 이제 천국 시민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위로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좀 힘들게 살지라도 너무 낙심하거나 억울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아직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영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사단은 집요하게 복음의 역사를 방해하고, 복음의 증인들을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주님은 곧바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고 구원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때가 이르면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울함으로 직접 복수하고 싶을 때에도 우리는 오래참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고,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6. 여섯째 인

마지막으로 12절에서 여섯째 인을 떼자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고,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큰 지진과 함께 각 산과 섬이 이동하는 지각 변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옛 세상이 물러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새 창조를 의미합니다. 어두움의 세력, 죄와 사망의 권세가 역사하는 옛 질서는 물러가고,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질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합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 12:26-29)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 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그리스도들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 영원한 나라를 받았으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 그 분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곧 새로운 세상이 오고,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그 날이 속히 오기를 학수고대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반면에 교만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 세상 권력자들 임금과 왕족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종과 자유인들까지 모두 다 공포심으로 두려워 벌벌 떨며 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산과 바위에게 외치길,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 보좌에 계신 분과, 어린양의 노여움으로부터 우리를 숨겨 다오! 그분들의 큰 진노의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견딜 수 있겠느냐?”

17절입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봇물이 터지듯 일시에 쏟아내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앞에서 누가 감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다 숨어 엎드러져서 벌벌 떨게 될 것입니다. 한국 감옥소에서 오랫동안 교도관으로 일하시며 복음을 전파해 오신 박효진 장로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제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형장에 끌려가는 그 순간 오줌을 질질 싸며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사색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그 무시무시한 순간에 누가 감히 똑바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날은 저들에게 공포와 절망의 날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온갖 고난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감당했던 모든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정신줄을 놓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롬 8:37)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심판과 승리의 날이 반드시 임할 것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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