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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11.26.20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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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274회 작성일 Nov 27 2023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3년 11월 26일
본문: 시편 121: 1-8
제목: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우리는 현재 아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뉴스를 시청하면 얼마나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사회 또한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까? 우선 인종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갈 수록 심해 지고 있습니다. 특히 빈부 격차는 갈 수록 심화되어 이에 따른 많은 문제가 파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총기 폭력과 총기 규제의 문제입니다. 매년 수천 명의 미국 시민이 총기에 의한 사망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 안전과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정치적 분열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정파성으로 인해 의회의 기능 마저 위협받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 문제에 대해 효과적인 대처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마약 문제가 심각합니다. 마약 딘속으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는 펜타닐의 오남용으로 크게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서 우리 모두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특히 코비드 이후 세상이 얼마나 불안정해졌습니까? 말 그대로 위기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경제적 위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국가도 파산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무엇보다 건강의 위기가 있습니다. 또 갑자기 뜻밖의 사고나 재앙이 엄습할 수 있는 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에 대한 위기가 있습니다.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내기 전 18년 동안은 매일 밤의 일과는 판에 박은 듯 똑같습니다. 문을 잠그고 불을 끄기기 전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는지 살핍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안전한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편히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집을 떠나는 날이 옵니다. 대학을 향하여 떠날 수 있고, 또 군대에 입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불을 끄고 문을 잠근다 해도 이전처럼 더 이상 안도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자녀들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특히 출가한 자녀들이라면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맡겨 드리지 않는다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안심하며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또 아주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자식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중한 병으로 누워계신 부모님을 두고 장시간 출장을 가야할 경우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발걸음이 떨어지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진정으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뿐입니다. (시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고대 중동에서는 우상을 만들어 신이라고 숭배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산 정상 이곳저곳에 자신들의 신전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며, 또 재앙을 막아달라고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며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서 산 위에 있는 여러 신전들을 봅니다. 어느 신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바알신이 나를 지켜줄까요? 아세라 여신이 나를 지켜줄까요? 아니면 태양신의 사제들이 도움이 될까요? 달신의 여사제들이 도움이 될까요? 아닙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입니다.”

예루살렘은 높은 산 위에 위치하고 있고, 그 주위를 산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군을 대처하기 좋은 천연요새지입니다. 순례자들이 멀리서 눈을 들어 바라보면 가장 먼저 시온산이 눈에 들어 옵니다. 드디어 순례의 목적지에 가까이 왔다는 안도감과 아울러 든든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든든하게 여기는 산이 과연 우리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예루살렘 성은 주전 586년 적군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함락 당했습니다. 그후 주후 70년에는 로마군대에 의해서 성전마저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훼파 당했습니다. 아무리 천연 요새라고 해서 이를 믿을 것이 못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힘이 있어야 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돈, 재물, 권력, 지위, 인맥, 미모, 인기를 찾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와 꾀, 그리고 경험을 의지합니다. 자신이 가진 힘을 대단하게 여겨 우쭐거립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흙수저로 밖에 살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힘 있는 부모를 만나야 인맥으로 좋은 직장을 얻게 되고, 집을 일찍 장만하고, 고급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힘을 가진 권력자와의 인맥, 부모, 돈, 학력 등등이 산처럼 든든한 도움이 되어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은 마치 거의 다 부러진 막대기에 자신의 몸을 기대는 것 같아서 아주 위태롭다고 말씀합니다. (시 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도록 우리 인생 길을 단련하십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에게 당부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희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고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게 하여 흡족히 마시도록 했으며, 옷과 신발도 헤어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지금 시편기자는 순례의 여정 중에 마침내 시온산을 멀리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시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분은 온 천하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그분께 더 어려운 일이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분께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없게 해준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천지를 지으시고 이 세상을 섭리 가운데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부터 도움이 온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영원히 지켜 주십니다.

1.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1-4절)

(시 121:3-4)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지켜보신다’ Watch over
주말에 학교 운동장을 지나면 시합이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벤치에는 부모들이 나와 열심히 응원합니다. 관객들은 많지 않는데 부모들은 개의치 않고 열렬히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릅니다. 부모들에게 점수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지요. 아끼며 사랑하고, 그래서 격려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저 사랑스러운 자식입니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하는 모든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리고 부모의 눈은 오직 자기 자식에게만 고정되어 있습니다. 시선이 자식에게만 촛점을 맞추고 좇아갑니다.

하나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 하나하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시합을 지켜보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은 갈등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지켜보시며 사랑하고, 격려하십니다. 늘 곁에 계셔서 돌보아 주십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벧전 3:12). 그분의 눈길을 우리 하나 하나에서 떼지 않고 고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부터 8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6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두려움이 생기거나, 강한 반대에 부딪히거나, 패배감을 느낄 때에는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뒤를 좇아 가듯이 하나님은 늘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

2)‘언제나’: 졸지 아니하시고 주무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보시는데 언제나, 항상, 늘 지켜보신다, 3절과 4절입니다. (시 121:3-4)“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고대 중동에서는 사람들이 ‘신들은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위기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제사의식으로 신들을 깨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을 깨우는 제사들은 아주 요란했고, 공을 아주 많이 들여야 했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큰 위기라고 느낄수록, 그것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최고의 정성을 바친다는 의미로 자녀들을 불살라 바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성경에도 나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 450명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종교에 도전장을 보내어 싸움 장소로 지정한 곳은 갈멜산이었습니다. 갈멜산은 이방 종교의 본부라고 할 만한 곳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어느 신이 참신인가?’를 결정 짓기 위해서 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르도록 응답하는 신이 참신으로 하자고 도전합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종일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그런데 응답이 없습니다. (왕상 18: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왕상 18: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그후에 엘리야 선지자는 돌단을 쌓고, 그 위에 송아지를 번제물로 올리고, 물을 붓는데 네 통을 세 번씩 두 번, 총 여섯번 붓도록 했습니다. 물이 도랑에 까지 차고 넘쳤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8)

우리 하나님은 이방신 우상처럼 한 눈을 팔거나 졸거나 주무시기에 깨워야 할 필요가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하나님을 상기시켜 주셨어요. 어느날 예수께서 안식일 법을 어겨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유대교 지도자들이 힐난하자 예수께서 “아버지가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응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하나님이 하시던 일에서 일순간이라도 손을 뗀다면 온 우주는 말 그대로 뒤죽박죽, 쑥대밭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행성들끼리 서로 충돌하여 폭발하고, 온 인류는 순식간에 파멸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 지금까지 온 우주를 변함없이 운행하시고 유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24시간, 일 년 365일 순간순간 우리를 언제나 지켜주십니다.

2. 하나님은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5-7절)

사람들은 평소에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살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면 비로소 내 힘과 능력으로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합니다. 특히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벗어나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절대자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달려 간구합니다. 그런데 사실 평소 아무 문제가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가 평안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현재 많은 위기 속에 살면서도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할까요? 왜 그리 감사하는 일에 우리는 더딜까요? 예를 들어 사고를 만났을 때, 건강을 상실했을 때, 망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내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매일 술에 취한 운전사, 마약과 총기 사건, 비행기 사고, 가정폭력,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직장 문제  등등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위험과 환란으로 부터 누가 우리를 지켜 줄 것인가? (시 121:5-7)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낮의 해’는 광야를 지나가는 순례길에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거칠고 황량한 들판, 사정없이 태양빛이 사정없이 내리쬐는데 쉴 만한 그늘조차 없습니다. 준비한 물도 부족합니다. 자칫 일사병에 걸려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낮의 해가 상치 않도록 하나님이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밤의 달’이라고 해서 휘영청 밝은 달 무드를 즐기는 길이 아닙니다. 중동 사람들은 밤의 달이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하여 밤에 두건을 쓰고 다녔습니다. 어떤 정신적 위험을 준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밤은 온도가 뚝 떨어져 추위를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늑대와 시랑이가 먹이감을 찾아 은밀히 움직이고, 전갈과 같은 해충이 활동하는 시간입니다. 간혹 강도들이 출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컴컴한 밤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든 환난에서 지키시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면하게 하시며’라는 말이 없습니다. 모든 환난에서 면제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환난에서 면제된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인생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어떤 환난이나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아무런 환난을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많은 환난과 위험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과 같은 자신을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의를 행하며 믿음대로 살려고 할 때 반대에 부딪치거나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시편 31:2)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모든 환란에서 지켜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7절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3. 하나님은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주신다 (8절)

하나님은 우리가 나가고 들어오며, 일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 집에 돌아오기 까지 지켜주심이 영원합니다. 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너의 출입을 지키신다’는 표현은 ‘문지방’을 넘나드는 일상생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을 포함한 중동 사람들은 집으로 들고 나가면서 문지방을 밟지 않는 독특한 관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문지방을 밟으면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다분했습니다. 문지방은 집과 세상을 분리하는 경계선입니다. 문지방 안은 안전과 안식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문지방 밖은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위험한 곳입니다. 아침에 문지방을 넘어 세상으로 나가지만 저녁에 문지방을 넘어 다시 가정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지방을 넘어서 밖으로 나갑니다. 나가서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위험하다고 밖에 나가 일을 보지 않는다면 그는 게으른 자입니다. (잠 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사명이 있는 존재로 보내셨습니다. 무의미하게 살다가 그냥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는 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상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약속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사명을 이루기까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약속하신 대로 승천후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위로하며 상담해 주시는 보혜사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믿었기에 죽음에 직면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설령 죽음이라는 최악의 환란일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영원히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 11:25-26)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롬 8: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8-39)“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결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모든 환란에서 지켜 주십니다. 영원히 지켜 주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마음에 평안과 담대함을 가지고 남은 해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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