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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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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331회 작성일 Oct 23 2023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3년 10월 22일
본문: 로마서 8: 28-30
제목: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설교자: 이강웅 목사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지난 주일에 배웠습니다. 자녀 됨의 영광과 축복도 있지만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에 따른 고난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 신자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은혜의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의로워서입니까? 선행을 많이 해서 입니까? 남들 보다 더 양심적이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의는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비천하고 비루한 우리를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셨습니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자녀이면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영광의 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 자리까지 우리를 끌어올리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우리도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을 통과한 후에 영광에 이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인 우리는 이 땅에서 고난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뿐만 아닙니다. 온 피조세계가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면서 지금 탄식하며 신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썩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몸이 언제 온전히 구속될 것인가, 그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성령님도 탄식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어야 할 것을 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면서 탄식합니다.

이쯤이면 예수 믿는 게 좋은 것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락이 무엇인지를 알겠고, 앞으로 어떤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겠는데 현실이 눅눅치 않습니다.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자체마저 버거운데 믿음의 길로 가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점에서 실패를 했습니다. 그들은 얼떨결에 출애굽해서 광야로 나왔는데 광야 생활이 만만치 않습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밤의 추위, 바람, 그리고 흙과 먼지 밖에 없는 광야는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낮에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시고, 밤에 불기둥으로 추위를 쫓아 주십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 생활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셨지만 현재의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서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심지어 지도자를 다시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출애굽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저들의 불신앙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광야에서 불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마구 무니까 맹독에 죽어갑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올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자 즉각 살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은 자기 고집과 불신앙 때문에 죽습니다. 광야에 불뱀 사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인해 원망과 불평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 것이냐, 아니면 불신앙으로 광야에서 죽을 것이냐,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냐, 불신으로 광야에서 죽을 것이냐, 이외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즉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지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해 설령 더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로 간다는 것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죄와의 싸움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종종 죄가 우리를 압도하여 끌고 갑니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낙심이 됩니다. 이쯤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세상 재미를 즐기며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뒤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잠시 후퇴하거나 주저앉을 수는 있어도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홍해를 건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빛의 나라 은혜의 왕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더 이상 죄와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죄와 싸우며 전진해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담대히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수준 보다 더 크고 높은 차원에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여 결국 그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 분발해서 의를 행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의지, 그리고 열심으로 이를 성취하실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루고야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됩니다. 좋은 일, 내가 잘한 일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고난과 아픔, 슬픔도 포함됩니다. 나의 실패와 실수도 포함됩니다. 조심스럽게 말씀 드립니다만 심지어 잘못된 죄까지도 포함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죄 짓는 것 자체는 결코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고, 그 열매는 매우 쓰디 씁니다. 쓰라림과 자책과 통한을 가져다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 까지도 선용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둘째 아들 탕자가 집을 떠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베풀어지는 아버지의 사랑과 관대함과 은혜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먼 타국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굶주려 죽게 되었을 때 비로서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거지가 다 되어 돌아온 아들을 뜨겁게 환영하며 환대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떠나기 전과 돌아온 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적어도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 관대함에 대해 이제 온몸으로 체험하며 깊이 감동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여기며 가볍게 취급하던 이전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와의 관계가 이전처럼 피상적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순복하며 사랑했을 것입니다. 이건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얻어질 수 없는 변화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들의 도덕 윤리적 문제를 두고 점수를 따지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더 크고 높은 차원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온갖 인생의 풍상을 겪은 후에, 망가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알아 이제 나도 용서할 줄 알고, 관용하고 관대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제 인생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내 인생이 왜 이리 꼬일꼬?”하고 하소연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시기심에 사로 잡혀 형들의 손에 애굽에 노예로 팔렸어요. 하루아침에 억울하게 노예로 전락했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런데 요셉의 감옥살이에도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습니다. 거기서 애굽 궁정의 관원장들 만나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의 흉악한 꿈을 해석하게 되어 애굽 총리가 됩니다. 훗날 그를 노예로 팔아 먹은 형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라고 말합니다. 물론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팔아 넘긴 형제들의 죄악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악한 일조차 선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팔았기 때문에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결국 애굽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근을 대비하게 하여 애굽과 주변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야곱의 집안 모든 식구들을 먹여 살려서 구원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요샙은 형들의 실수를 선용하여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을 너그러이 용서하였습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공평한 일을 만났을 때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나 실패를 통해서도 능히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얼핏 보기에는 후퇴하거나 역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더 신속히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선’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29절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진술되어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하심으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차적 목적은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본받다’라는 말은 ‘같은 모양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닮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가지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진하게 내풉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모습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느낌을 가질까요?

(고후 6:4-10)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닮아가는 삶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닮은 자녀가 되는 것, 곧 우리 몸까지 구속하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루게 될, 하나님이 목적하신 ‘선’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또 다른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는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맏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이며,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위치를 우리와 같은 혈통적인 의미로 바꾸어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맏형이 되고, 우리는 그분을 닮은 형제가 되어 이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을 때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여 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가장 큰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끊고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모든 족속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구원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알기에 우리 모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결론: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은 나쁜 것이고, 편하고 잘나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도 귀하게 쓰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을 때에 우리가 인생의 부분 부분만 바라보면 이해할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바라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은 모자이크와 같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당장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분부분은 분명히 깨어짐이요, 아픔입니다. 상처요, 슬픔입니다.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조합하여서 환상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누구에게 이런 아름다운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서 살고 있습니까? 물론 자신의 부적합함과 부적격성을 느끼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세상 길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가는 길이 분명합니까? 그렇다면 안심하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실패처럼 보이는데 나중에 보면 복된 길입니다. 얼른 보면 망하는 길 같은데 그곳이 승리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의 고난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미리 알고 택하신 자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놓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고난 중에 있습니까? 생계고로, 질병과 노쇠함으로, 외로움으로 황량한 광야에 서 있는 느낌입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계심을 믿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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