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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성령의 검 (08.2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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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21회 작성일 Aug 24 2026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8월 23일
본문: 에베소서 6: 17
제목: 성령의 검
설교자: 이강웅 목사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서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나씩 살펴보았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호심경),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까지는 주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무장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바울은 손에 공격용 무기를 들려줍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왜 하필 검일까요? 당시 로마 군대에는 활도 있었고 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은 적과 가까이 맞붙어 싸우는 근접전의 무기였습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그렇습니다. 마귀의 공격은 멀리 있는 막연히 멀리 떨어져 있는 추상적인 세계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인간관계 속에서, 아무도 없는 밤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일어납니다. 특별히 이민자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칼을 갈며 살았습니다. 언어, 문화, 경제, 그리고 이제는 건강과의 치열한 전투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를 외부의 고난으로만 공격하지 않습니다. 가장 은밀하고 안전해야 할 내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가, 나와 함께하시는가?”하는 질문으로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은 단순히 우리의 생각과 감정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갈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함이라”(엡 6:12)

성경은 악의 세력의 영적 실재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반드시 어둠의 권세와 충돌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서 우리에게“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을까요?

1.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어둠의 권세와 충돌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자,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죄인들이 용서를 받으며, 귀신들이 쫓겨나고, 사탄에게 억눌렸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여기에 성령, 귀신(악한 영)의 축출, 하나님 나라, 이 세 가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지배하던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의 세간을 빼앗으려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권세 아래 붙잡힌 자들을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전쟁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때부터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합니다. 마귀는 돌을 떡으로 만들라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고, 성전 꼭대기에서는 성경까지 인용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게 했고,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필요를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말씀을 욕망에 이용하며, 십자가 없는 영광을 선택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때마다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탄의 거짓이 들어오는 바로 그 지점에 하나님의 진리로 맞서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마귀도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전체 뜻과 문맥에서 떼어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면 말씀조차 유혹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게 이끌리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거짓을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검입니다.

이 광야의 승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시고 승리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죄 용서의 사건인 동시에 악의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승리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그 승리의 선언입니다.

이로써 죄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죽음도 마지막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탄도 딴 소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전쟁은 승리를 만들어내려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로 올리우시는 승천으로 이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시자,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던 하나님 나라의 전진이 이제 성령 받은 교회를 통해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가 성령 받은 교회를 통하여 온 세상을 향하여 확장되는 이야기입니다.

2. 에베소에서 성령의 검은 말씀의 전진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이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 지역을 지배하던 영적 세력과 충돌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도시가 바로 에베소입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대하는 것이 아니요…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함이라”고 편지를 쓴 교회가 바로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상업도시이자, 거대한 아데미 신전으로 유명한 종교도시였습니다. 우상숭배와 마술, 주술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는 종교와 문화와 경제가 깊이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 도시로 들어간 것은 군대도, 정치권력도, 돈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했습니다(행 18:4). 그리고 거기서 쫓겨나자 두란노 서원에서 약 두 해 동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말씀을 통하여 에베소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씀이 전진하자 어둠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뜻밖의 방식으로 드러났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지 않던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예수의 이름이 능력 있다는 소문만 듣고, 그 이름을 마치 주문처럼 흉내 내어 귀신을 쫓아내려 했습니다. 그러자 악귀가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 19:15)

예수님의 이름은 주문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문장이나 방법에 권세가 나타나는 것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실패한 시도를 통해서 오히려 에베소 사람들은 참된 권세가 어디에 있는지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자신들이 쓰던 마술책을 가지고 나와 불태웠습니다. 그 값이 은 오만이었는데, 당시 하루 품삯 기준으로 무려 5만 일치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치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책 몇 권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삶의 주인을 바꾼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단순히 귀신에게 “나가라”고 외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의 주인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무엇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될 것인가. 누가는 이 사건을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성도 여러분, 누가는 바울이 세력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력을 얻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이 세력을 얻었습니다. 복음이 도시의 가치체계까지 뒤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우상을 버리기 시작하자,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팔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위기를 느꼈습니다. 복음이 개인 몇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까지 흔들자,  결국 도시 전체가 큰 소동에 빠졌습니다.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소요를 일으킨 것입니다.

악은 개인의 생각 속에서만 역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돈과 권력과 문화와 결합하면 사람을 지배하는 거대한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숭배는 단순한 종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종교와 돈, 문화와 경제, 도시의 자부심과 인간의 욕망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으로 복음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어둠의 나라의 충돌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을 너무 작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의 두려움과 낙심, 유혹과 정죄도 영적 전쟁의 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통치와 사탄의 임금 노릇, 진리와 거짓,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우상을 예배하는 것 사이의 충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3. 오늘 우리는 이민의 땅에서 성령의 검을 들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이 에베소의 이야기가 오늘 현대인들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아데미 신전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모양만 달라졌습니다.

오래 전, 삼십 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하며 두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신 권사님과 나눈 대화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은퇴할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이유를 여쭤보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통장에 돈이 입금되어야 잠이 와요. 손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요.” 그 권사님은 평생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으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나를 지켜주는 것은 통장의 숫자라고 믿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이민자들은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벌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내가 겪었던 고생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이 수고는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벌기 시작한 돈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안전하다.” “노후 준비만 잘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 이렇게 돈을 하나님 보다 더 깊이 의지하면 이제 돈은 생활수단이 아니라 우상입니다.

자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자녀의 성공이 내 인생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이 신앙보다 더 중요해진다면 그것 역시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우상인 것입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깊이 의지하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영적 싸움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성령의 검은 다른 사람을 향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비추고 찌르는 검입니다. 나의 욕망을, 나의 교만을,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우상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눈을 밝히실 때 수없이 읽었던 말씀이 어느 날 나를 찌릅니다. “아, 내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있었구나.”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욕심을 강요하고 있었구나.” “수십 년 동안 이 사람에 대한 미움을 내가 붙들고 있었구나.”

성령께서 새로운 성경을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외로움이 밀려올 때,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자녀 문제 때문에 마음이 무너질 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자신의 실패 때문에 주저앉고 싶을 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말씀이 우연히 떠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심겨 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말씀을 마음에 쌓아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말씀이 없다면 위기의 순간에 붙들 말씀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라, 너무 많은 목소리가 우리의 생각을 차지하려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열면 정치, 경제, 건강, 투자, 신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장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오늘의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고 그것이 곧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성경을 인용한다고 그 주장이 성경적인 것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마귀도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말씀으로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유튜브를 많이 본다고 영적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야 분별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 말씀에 순종할 능력을 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떠오를 때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면 성령께서 용서할 힘을 주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세상이 다 괜찮다고 말해도 죄와 타협하지 않을 힘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을 붙들면,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십니다. 

바로 그 순간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성령의 검이 됩니다. 그렇다고 성령께서 무능한 말씀에 능력을 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살아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성령께서 사용하셔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찌르고, 거짓을 드러내고, 우리를 회개와 믿음과 순종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붙잡혀 있었던 죄를 내려놓습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합니다. 절망 속에 주저앉았던 사람이 다시 일어납니다. 돈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 도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 개인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마술의 세계로, 우상숭배의 세계로, 돈과 종교와 문화가 결합된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자유하게 했습니다. 진리가 자유케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미국 땅에서 우리끼리 신앙을 지키다가 천국 가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정과 일터와 학교와 이웃과 지역사회 가운데 보내셨고, 우리 손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대하는 것이 아니요” 배우자도, 자녀도, 나와 생각이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도, 다른 인종과 문화의 사람도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거짓과 죄와 우상과 어둠의 권세를 향한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은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검입니다. 거짓을 베어 사람을 자유하게 합니다. 우상을 무너뜨려 하나님께 돌아오게 합니다. 절망을 깨뜨려 소망을 줍니다. 죄에 묶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용서를 선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부활의 소망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사용하는 성령의 검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천 년 전 에베소에는 거대한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마술과 우상숭배가 있었고, 돈과 종교와 문화가 결합된 강력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많은 목소리가 우리의 생각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돈이 안전을 약속하고, 성공이 행복을 약속합니다. 우리 자녀 세대가 교회로 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승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먼저 싸우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고,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승리를 얻어내려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로부터 시작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펴십시오. “성령님, 내 눈을 열어 이 말씀을 깨닫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읽으십시오.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가 밀려올 때 말씀으로 분별하십시오. 두려움이 찾아올 때 말씀을 붙드십시오. 유혹이 찾아올 때 말씀으로 맞서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과 이웃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어둠을 몰아내시고, 사람을 살리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진시키십니다. 에베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자녀들의 삶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이민의 땅에서도,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굳게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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