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의 축복 (08.31.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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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362회 작성일 Sep 01 2025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8월 31일
본문: 창세기 2:1-3
제목: 안식의 축복
설교자: 이강웅 목사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서론:
내일 노동절(Labor Day)을 앞두고 우리는 3일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Labor day’는 ‘여름이 끝나는 날’로서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Labor Day’ 다음날인 화요일은 미국 전역에서 개학을 합니다. 아이들 키우셨거나 키우시고 계시는 분들은 방학 때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지 공감할 것입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인 경우,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과 매일 아이들 보낼 과외활동을 마련하는 일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차라리 어서 개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Labor day’는 학부모들의 ‘해방되는 날(liberation day)’이라고도 합니다. 여기 저기서 학부모들의 만세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이번 연휴에 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 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휴일에도 열심히 일하여 더 빨리 생활의 안정을 찾고, 더 많이 벌어서 노후 준비를 든든히 하는 것 같아 ‘이대로 쉬다간 뒤처질 것 같아’,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라는 불안감은 없습니까? 어쩌면 내게 ‘쉼’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말씀에 따라 우리가 쉼이 있는 안식의 삶이 얼마나 우리의 생명력을 넘치하고, 풍성하며 부요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여호수아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땅을 취하라고 명하십니다. 물론 가나안땅에는 이미 가나안족속들이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견고한 성곽과 성벽을 쌓았고 그들의 군대는 막강했습니다. 이런 그들과 싸워서 땅을 빼앗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쟁을 이기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월등한 전략상의 우세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더 나은 무기로 무장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입니다.
(수 1:7-8)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는 흔히 생각하듯이 원수들을 무찌르는 용기가 아닙니다. 여호와 가르침(율법)을 지키는 용기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율법에서 가르치는 내용, 즉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그들에게 주어진 수명과 사명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특별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불러냈습니다.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소명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고 부르심을 받은 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수행하면 모든 일에 형통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들을 이길 적군이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범사에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며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했을까요? 그것은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증거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준수함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을 때 그들은 바로의 종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없었고, 그저 일만 해야했습니다. 일만 계속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우리는 ‘노예’라고 부릅니다. 노예는 그저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할 능력이 없거나 병이 들면 버림을 받습니다. 그들은 삶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지 못한채로 끝없이 계속해서 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목적 없이 노예로 끊임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예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인이 되어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애굽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것은 안식을 위한 탈출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없이, 매일 돈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들, 인생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해도 그 사람의 삶은 세상적인 것에 매여 자유하지 못합니다. 휴식없이 일만 하는 사람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의미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종으로 매인 삶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날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깊게 하여, 다시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안식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고, 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기 원합니다.
1. 완전한 창조와 하나님의 안식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1절) 하나님은 창조를 엿새동안에 끝내고 일곱째날에 이를 때 마쳤습니다. ‘마쳤다’는 ‘완성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에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는데 차차 진화되어서 오늘날의 인류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한 인격체로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피조물 세계를 완전하게 만드셨기에 여기에 완전한 균형과 조화가 있었습니다. 피조물 상호간에 부조화가 없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마치 위대한 화가가 마지막 붓 터치를 끝내고 캔버스에서 물러나, 자신의 완벽한 작품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과 같습니다.
엿새동안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날을 구별하여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안식이라는 두 리듬을 통해 우주를 운행하십니다. 일과 휴식이라는 두 개의 리듬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0:8절에 보면 “엿세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을 명합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것 만큼이나 엿세동안에는 힘써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칠일째는 반드시 쉬어야합니다. 땅도 쉬어야 하고, 인간도 쉬어야 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종업원, 심지어 가축까지도 쉬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되는 날 안식을 취하시면서 하나님은 무엇하셨을까요? 엿새동안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둘러보시고 즐거워하시며 감상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뛰어난 풍경을 볼 때 저절로 발길이 멈추고 탄성을 지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창조한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올바른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비결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느껴보고 즐겨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불안과 염려로 가득 찰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깐 멈추어 서서, 내가 너를 얼마나 완전하게 창조했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바라보아라.” 이 때 축복과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안식의 축복입니다.
2. 안식일의 축복
하나님은 일곱째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쉬셨습니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1) ‘복 주다’: 이는 히브리어 ‘바라카’라는 단어로 ‘축복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신 날을 중요하게 따로 구별하여 그날을 기쁜 날이요, 즐거운 날이요, 행복한 날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참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날들을 복 주셨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일곱째날만 복을 주셨어요. 따라서 여러분이 복 받는 비결은 하나님이 복 내려 주신 날을 열심히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일 하루를 교회에서 보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요. 하루라도 더 벌어야지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조급함과 불안감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6일을 열심히 살고 하루 온전하게 그리스도안에서 안식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계산으로는 타산이 안맞아요. 그러기에 안식을 지키는데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복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열심히 일해도 돈이 모이지 않아 답답하고 초조한 분도 계실 겁니다. 지금 물가가 많이 올랐기에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신통치 않아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더 좋은 방법이 없냐’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지라도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와 국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남들이 일하는 주일에 교회를 나오는 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칠일에 하나님께서 복 주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족과 건강과 삶의 모든 것에 부어 주시는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조금 더디가는 것 같지만 이 길이 확실한 길입니다.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입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의 복을 놓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2) 거룩하게 한다“: 성경에서 거룩이란 말이 나올 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따로 떼어서 구별하다’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이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따로 떼어 축제와 같이 즐겁게 쉴 수 있는 그런 날로 만들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은 다른 용도로 써서는 안됩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은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버지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고, 성전에 있던 모든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잔치를 벌이고, 그 성전에서 쓰던 기명들을 꺼내어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죽었습니다.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어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을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구별하셨어요. 이 하루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지 다른 목적으로 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되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만약 안식일이 없다면 우리 모두 이 세상이 저절로 되어진 줄로 알 것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세상을 사는 줄로 알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유의 주가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노예는 매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노예제도가 없기에 노예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신종 노예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어요. 붙잡히거나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노예입니다. 도박에서 풀려 나지 못해요. 술독에서 헤어나지 못해요. 왜 그래요?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 많이 하는 것을 자랑 삼아 말합니다. 물론 열심히 일해야겠지만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가정을 소홀히 할 정도로 일에 빠진 사람은 일의 노예입니다. 노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루 쉬는 것이 불안해요. 예배 드리는 것이 불안합니다. 곧 망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손에서 놓치 못해요. 놀면서도 불안한 사람, 이 사람이 노예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믿음으로 하루를 쉽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을 자칫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업’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잘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에 꼼지락하지 않는다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신앙생활했고, 옛날 한국 교회도 그렇게 신앙생활했습니다. 단추가 떨어져도 주일성수한다고 달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주일성수한다고 했습니다. 그 정신은 참 가상합니다만 이것이 유대인들이 빠졌던 함정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준수하느냐 마느냐, 말 그대로 문자에 매여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 안식일의 정신을 놓쳤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생업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생명과 안녕, 그리고 행복이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여기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제가 먹고 살기 위해서 지금 일하지만 이것이 내게 생명을 준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제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 행복과 안녕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이 신앙고백으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제 7일에 생업을 중단하여 안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서 우리 생명을 확보하고 연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을 절대화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내 노력, 내 경험, 내 힘, 내 능력, 이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저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 즉 이 세상 일을 우상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마치 구원이 있는 것처럼, 여기에 나의 구원이 달려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나의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고, 나의 일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섬기고 내 이웃을 섬기기 위한 방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지금 노예입니까, 아니면 자유인입니까?
쉬면서도 불안하고, 일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 같아 초조해하는 삶은 어쩌면 여전히 세상과 일의 노예로 사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불안을 끊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렇게 자유를 주신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일에 우리가 모여 예배하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지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치열한 경쟁 속의 세상에서 모든 염려와 불안을 뒤로하고, “나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라고 온몸으로 선포하는 승리의 고백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날짜: 2025년 8월 31일
본문: 창세기 2:1-3
제목: 안식의 축복
설교자: 이강웅 목사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서론:
내일 노동절(Labor Day)을 앞두고 우리는 3일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Labor day’는 ‘여름이 끝나는 날’로서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Labor Day’ 다음날인 화요일은 미국 전역에서 개학을 합니다. 아이들 키우셨거나 키우시고 계시는 분들은 방학 때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지 공감할 것입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인 경우,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과 매일 아이들 보낼 과외활동을 마련하는 일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차라리 어서 개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Labor day’는 학부모들의 ‘해방되는 날(liberation day)’이라고도 합니다. 여기 저기서 학부모들의 만세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이번 연휴에 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 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휴일에도 열심히 일하여 더 빨리 생활의 안정을 찾고, 더 많이 벌어서 노후 준비를 든든히 하는 것 같아 ‘이대로 쉬다간 뒤처질 것 같아’,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라는 불안감은 없습니까? 어쩌면 내게 ‘쉼’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말씀에 따라 우리가 쉼이 있는 안식의 삶이 얼마나 우리의 생명력을 넘치하고, 풍성하며 부요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여호수아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땅을 취하라고 명하십니다. 물론 가나안땅에는 이미 가나안족속들이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견고한 성곽과 성벽을 쌓았고 그들의 군대는 막강했습니다. 이런 그들과 싸워서 땅을 빼앗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쟁을 이기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월등한 전략상의 우세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더 나은 무기로 무장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입니다.
(수 1:7-8)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는 흔히 생각하듯이 원수들을 무찌르는 용기가 아닙니다. 여호와 가르침(율법)을 지키는 용기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율법에서 가르치는 내용, 즉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그들에게 주어진 수명과 사명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특별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불러냈습니다.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소명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고 부르심을 받은 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수행하면 모든 일에 형통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들을 이길 적군이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범사에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며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했을까요? 그것은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증거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준수함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을 때 그들은 바로의 종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없었고, 그저 일만 해야했습니다. 일만 계속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우리는 ‘노예’라고 부릅니다. 노예는 그저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할 능력이 없거나 병이 들면 버림을 받습니다. 그들은 삶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지 못한채로 끝없이 계속해서 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목적 없이 노예로 끊임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예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인이 되어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애굽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것은 안식을 위한 탈출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없이, 매일 돈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들, 인생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해도 그 사람의 삶은 세상적인 것에 매여 자유하지 못합니다. 휴식없이 일만 하는 사람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의미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종으로 매인 삶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날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깊게 하여, 다시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안식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고, 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기 원합니다.
1. 완전한 창조와 하나님의 안식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1절) 하나님은 창조를 엿새동안에 끝내고 일곱째날에 이를 때 마쳤습니다. ‘마쳤다’는 ‘완성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에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는데 차차 진화되어서 오늘날의 인류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한 인격체로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피조물 세계를 완전하게 만드셨기에 여기에 완전한 균형과 조화가 있었습니다. 피조물 상호간에 부조화가 없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마치 위대한 화가가 마지막 붓 터치를 끝내고 캔버스에서 물러나, 자신의 완벽한 작품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과 같습니다.
엿새동안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날을 구별하여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안식이라는 두 리듬을 통해 우주를 운행하십니다. 일과 휴식이라는 두 개의 리듬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0:8절에 보면 “엿세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을 명합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것 만큼이나 엿세동안에는 힘써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칠일째는 반드시 쉬어야합니다. 땅도 쉬어야 하고, 인간도 쉬어야 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종업원, 심지어 가축까지도 쉬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되는 날 안식을 취하시면서 하나님은 무엇하셨을까요? 엿새동안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둘러보시고 즐거워하시며 감상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뛰어난 풍경을 볼 때 저절로 발길이 멈추고 탄성을 지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창조한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올바른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비결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느껴보고 즐겨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불안과 염려로 가득 찰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깐 멈추어 서서, 내가 너를 얼마나 완전하게 창조했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바라보아라.” 이 때 축복과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안식의 축복입니다.
2. 안식일의 축복
하나님은 일곱째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쉬셨습니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1) ‘복 주다’: 이는 히브리어 ‘바라카’라는 단어로 ‘축복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신 날을 중요하게 따로 구별하여 그날을 기쁜 날이요, 즐거운 날이요, 행복한 날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참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날들을 복 주셨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일곱째날만 복을 주셨어요. 따라서 여러분이 복 받는 비결은 하나님이 복 내려 주신 날을 열심히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일 하루를 교회에서 보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요. 하루라도 더 벌어야지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조급함과 불안감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6일을 열심히 살고 하루 온전하게 그리스도안에서 안식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계산으로는 타산이 안맞아요. 그러기에 안식을 지키는데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복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열심히 일해도 돈이 모이지 않아 답답하고 초조한 분도 계실 겁니다. 지금 물가가 많이 올랐기에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신통치 않아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더 좋은 방법이 없냐’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지라도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와 국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남들이 일하는 주일에 교회를 나오는 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칠일에 하나님께서 복 주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족과 건강과 삶의 모든 것에 부어 주시는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조금 더디가는 것 같지만 이 길이 확실한 길입니다.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입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의 복을 놓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2) 거룩하게 한다“: 성경에서 거룩이란 말이 나올 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따로 떼어서 구별하다’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이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따로 떼어 축제와 같이 즐겁게 쉴 수 있는 그런 날로 만들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은 다른 용도로 써서는 안됩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은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버지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고, 성전에 있던 모든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잔치를 벌이고, 그 성전에서 쓰던 기명들을 꺼내어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죽었습니다.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어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을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구별하셨어요. 이 하루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지 다른 목적으로 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되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만약 안식일이 없다면 우리 모두 이 세상이 저절로 되어진 줄로 알 것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세상을 사는 줄로 알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유의 주가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노예는 매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노예제도가 없기에 노예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신종 노예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어요. 붙잡히거나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노예입니다. 도박에서 풀려 나지 못해요. 술독에서 헤어나지 못해요. 왜 그래요?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 많이 하는 것을 자랑 삼아 말합니다. 물론 열심히 일해야겠지만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가정을 소홀히 할 정도로 일에 빠진 사람은 일의 노예입니다. 노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루 쉬는 것이 불안해요. 예배 드리는 것이 불안합니다. 곧 망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손에서 놓치 못해요. 놀면서도 불안한 사람, 이 사람이 노예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믿음으로 하루를 쉽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을 자칫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업’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잘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에 꼼지락하지 않는다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신앙생활했고, 옛날 한국 교회도 그렇게 신앙생활했습니다. 단추가 떨어져도 주일성수한다고 달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주일성수한다고 했습니다. 그 정신은 참 가상합니다만 이것이 유대인들이 빠졌던 함정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준수하느냐 마느냐, 말 그대로 문자에 매여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 안식일의 정신을 놓쳤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생업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생명과 안녕, 그리고 행복이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여기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제가 먹고 살기 위해서 지금 일하지만 이것이 내게 생명을 준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제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 행복과 안녕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이 신앙고백으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제 7일에 생업을 중단하여 안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서 우리 생명을 확보하고 연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을 절대화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내 노력, 내 경험, 내 힘, 내 능력, 이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저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 즉 이 세상 일을 우상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마치 구원이 있는 것처럼, 여기에 나의 구원이 달려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나의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고, 나의 일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섬기고 내 이웃을 섬기기 위한 방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지금 노예입니까, 아니면 자유인입니까?
쉬면서도 불안하고, 일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 같아 초조해하는 삶은 어쩌면 여전히 세상과 일의 노예로 사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불안을 끊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렇게 자유를 주신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일에 우리가 모여 예배하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지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치열한 경쟁 속의 세상에서 모든 염려와 불안을 뒤로하고, “나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라고 온몸으로 선포하는 승리의 고백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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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0ZpH4DrcGs 201회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