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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목회자의 감사기도 (11.19.20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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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424회 작성일 Nov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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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3년 11월 19일
본문: 골로새서 1: 3-6
제목: 목회자의 감사기도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성찬식과 함께 드리게 됩니다. 예배 후에는 정성껏 준비한 만찬을 함께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도네이션해 주신 분들이 계시고, 어제 오늘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돌이켜 보면 올해는 친교를 참으로 풍성하게 다양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국밥은 말할 것 없고, 붕어빵을 간식으로 만들어 주시고, 수요찬양예배 후에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셔서 섬겼습니다. 이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의 헌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니까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같은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제하며 기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사랑으로 성도들을 섬깁니다.

그렇다고 교회생활이 늘 즐겁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통스럽습니다. 힘이 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과 즐거움 뿐만 아니라 이런 슬픔과 아픔도 함께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곳이 교회입니다.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비록 교회가 불완전하고, 연약하지만 여전히 교회가 영광스러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누는 성도들의 교제는 우리끼리만 좋아 지내는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있는 교제입니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그래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사귐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귐, 교제란 세상에서 갖는 교제와는 다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이신 주님과 교제하면서 ‘보고 듣고 만진 바’, 즉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얻은 은혜를 다른 성도들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도들 간에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사귐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되고, 그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더 풍성한 생명의 교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소생함을 얻고, 우리의 신앙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견고해져 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는 영적인 기쁨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다시금 세상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흥분을 자아내고, 자연스레 주목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무언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로 부터 역동적인 힘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에서 시련을 겪은 분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 계시고, 투병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며, 안간힘을 다해 믿음을 붙잡고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분도 계십니다. 이렇게 믿음의 시련을 혹독하게 치루고 계시는 분들이지만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감사해 하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붙잡아 주시는 은혜만으로도 감격해 합니다.

우리가 11월 감사 절기를 맞이해서 감사할 일들이 참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 한 가지, 교회에 대해, 성도에 대해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목회자의 심정을 가지고 골로새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합니다. 과연 사도 바울은 어떤 점에서 골로새 성도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일까요?

골로새에 있던 성도들도 처음 복음을 듣고 믿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새 생명을 받은 기쁨에 충만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차츰 핍박이 다가옵니다. 이걸 바라보는 사도 바울의 목회자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어린 신자들에 불과한 저들이 과연 저 핍박을 잘 견디어 낼까? 어린 싹과 같은 저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안스러운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에바브라 집사님이 돌아와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상세히 전해 줍니다. 그들이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그리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던지, 즉시 편지를 씁니다. 이것이 골로새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믿음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 없이는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없고, 신령한 세계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골 1:3-4)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한국 기독교 초기에 사경회를 통해 부흥 운동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열리는 그런 부흥회와는 다릅니다. 사경회는 농한기에 열려서 한 번 열리면 열흘 정도씩 했습니다. 새벽, 아침, 저녁에 몇 시간씩 집중적으로 성경을 풀어 가르쳤습니다. 1901년 평양에서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여자들만 모인 사경회였는데 그 사경회에 300리 떨어진 삭주, 창성 등 압록 강변에서도 부녀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당시의 사경회에 참석한 여러 부녀들의 사진이 선교 잡지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는 보따리를 이고, 뒤에 등짐을 지고, 짚신을 신은 여인들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 공부를 하고자 보따리를 이고, 지고, 300리 길을 산과 물을 건너온 것이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사나히 사경회", 즉 남자들 사경회가 평양에서 열렸는데 4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삭주, 창성 지방에서, 상주, 해주, 서울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목포, 무안 지방에서 참석한 형제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수해 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평양에서 사경회를 하는데 목포, 무안 지방에서 참석할 수 있었던 사람들, 이런 믿음의 선배들을 가진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가 성경 위해 세워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만큼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골로새 성도들도 비록 신앙의 연륜이 짧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확실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우리처럼 각자 자기 성경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 서적은 더욱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제한된 상황이었지만 소박하게 복음을 듣고서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굳게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해들은 복음은 세련된 설교집이 아니고, 유창한 설교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거칠고 투박한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 삼일 만에 일어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지금도 왕 중의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원간에 다시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확신하니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곤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이런 골로새 성도들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계속 자라고 있습니까? 건강합니까? 그래서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도 견고합니까? 시련을 맞이해서도 요동하지 않습니까? 장차 임종의 자리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그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감사는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사랑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도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실 때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긴박한 순간에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서로 사랑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실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저희가 기다리는 메시아로 믿고 3년 동안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된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실 두려움과 공포가 확 밀려오면 다급한 나머지 믿음을 저버릴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정신적, 영적 위기에서 무엇이 제자들로 하여금 믿음을 꿋꿋이 지켜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담대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이것을 너희가 실행하면 사람들이 이를 보고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 13:3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거나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거나 봉사하거나 전도하거나 선교할 때 세상의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그들은 그것을 보고 ‘아, 이 사람들은 정말 예수의 제자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 발을 씻겨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기 체면이나 위신을 따지지 않습니다. 무조건 헌신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감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가 뜨거워도, 말씀에 열심이 있어도, 교회 조직이 튼튼하고, 전도와 선교를 많이 하여도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보고 기뻐하며 감사한 것은, 그런 복음의 열매 사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은 목원 식구들을 돌아보며 섬겼습니다. 손에 물을 묻히며 친교를 준비하고, 청소로 수고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가능하였습니다. 

마지막 셋째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늘에 쌓아둔 소망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5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골 1:5)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하늘에 대한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이 세상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고전 15:32-34)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때가 이르면 우리는 영광의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것처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시련을 겪으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이유 세 가지 믿음, 소망, 사랑은 바울이 즐겨 다루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교회에는 이 세 가지가 있어야 교회답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이 세 가지를 균형있게 잘 갖춘 교회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마치 파릇파릇 돋아나는 어린 싹과도 같이 연약하였지만 예수의 생명력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 영향력이 세상에 미치고 있었습니다. (골 1: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 날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복음을 듣고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게 된 것은 믿음, 사랑,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전해들은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그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였겠습니까?

그런데 골로새 교회가 이렇게 복음으로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에바브라하는 신실한 집사님의 헌신적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에바브라가 먼저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도시에 가서 이 복음을 전파하고 신실하게 말씀을 전파하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골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여기서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를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 집사였습니다. 4장 12절에서는 그를“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하면서 항상 너희들을 위해서 애써 기도한다고 말씀합니다. (골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마지막으로 빌레몬서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몬 1:23) 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복음을 위해서 사도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습니다.

에바브라는 예수를 믿자마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성에 압도된 나머지 그에게만 찬사를 보내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뒤에서 아름답게 헌신했던 에바브라 집사를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에바브라 집사처럼 헌신적으로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올해 얼마나 그들이 섬겨 주었는지 모릅니다. 목장 식구들을 돌아보고, 환우들을 위해 죽을 끓이고, 바깥 출입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음식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수요일과 주일을 위해 손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수고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런 분들의 헌신과 수고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복음의 열매를 온 천하에 맺어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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