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기느니라 (11.12.2023)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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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11.12.20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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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1,085회 작성일 Nov 13 2023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3년 11월 12일
본문: 로마서 8: 35-39
제목: 넉넉히 이기느니라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세상 사람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매우 하찮게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자기의 생존과 방어를 위해서 어떤 세상적인 권세나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때리면 맞을 것이고, 감옥에 넣으면 들어갈 것이고, 죽이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사람들에게 헌신을 강요할 힘도 없습니다. 회사처럼 돈을 주면서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가 가진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하는 교회가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이자, 잊혀져가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오히려 넉넉히 이길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와 마귀의 궤계로 인해서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영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간교한 술책을 부려도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녀들에게 불가항력의 사랑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이를 거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교회는 과거에 핍박 가운데서도 승리해 왔고, 앞으로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현재 교회의 모습에는 아주 문제가 많고, 시대에 뒤져서 곧 도태될 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재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나요? 현실이 낙심되고 지치셨나요? 신앙생활이 지루하고 재미 없습니까? 야곱을 생각해 보십시오. 7년 동안 뼈 빠지도록 일했는데 그가 사랑하던 라헬과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삼촌 라반에게 속은 것입니다. 라반이 다시 계약을 맺자고 합니다. 앞으로 7년 더 일하면 라헬마저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불합리한 계약 속에서 그는 견뎌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아주 낭만적인 말을 합니다. 라헬을 사랑한 나머지 그 고통스러운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사랑은 놀라운 삶의 에너지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저런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고, 직장과 사업에서 성공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돈이 많았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우리 인생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영광의 그날까지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 듣기 원합니다.

1. 검증 받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지난 시간에 4가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우리를 죄인으로 단정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자주 까먹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려 의심하고, 염려하고, 불안하여 의기소침하여 살아갑니다. 받은 은혜를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문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생각해 보라! 두려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염려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우리가 받은 은혜와 의롭다 하시는 진리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메마른 교리가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만일 그래도 여전히 강력한 확신과 능력 가운데 살고 있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도 제대로 능력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장엄한 구원의 역사가 그 정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클라이막스 지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다같이 35-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물론 사도 바울은 목회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현실적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게 할 만큼 심각한 도전들을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환난(tribulation)입니다. 환난은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갈 때에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될 시련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을 피해 갈 수 없지만 우리는 환난 중에 도리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승리하게 됩니다. 

둘째는 곤고(distress)입니다. 이는 환난을 통과할 때에 우리의 내면에서 느끼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과거 유럽에서는 사형을 선고한 후에, 죄수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아 가슴을 눌러서 죽이는 형벌이 있었습니다. 무거운 것이 가슴을 압박하는 것처럼 눌리는 상황이 바로 곤고한 상황인 것입니다. 앞뒤가 꽉 막힌 위기를 의미합니다.

셋째는 핍박(persecution)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겪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 때문에 핍박이 찾아올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다섯째는 기근(famine)과 적신(nakedness)입니다. 기근과 적신은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추방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마을이나 직장에서 쫓겨나 산의 동굴에서 지내야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동네에서 옷이 벗겨진 채로 조롱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여섯째는 위험(peril)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위험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도 선교 여행 중에 강과 강도, 유대인, 이방인, 시내, 광야와 바다,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일곱번째는 칼입니다. 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최후에 그의 믿음으로 인하여 칼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많은 형제들이 핍박으로 인하여 처형되었고, 초대의 지도자였던 폴리캅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화형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조금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를 열거한 것은 결코 현실을 과장하거나 관념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바울 자신이 복음 때문에 겪어야 했던 많은 고통에 대해 고린도후서 11:23-2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여러 차례 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행한 채찍으로 때리는 형벌인데, 주로 당시에 회당에서 신성모독이나 거짓된 가르침을 주는 사람 혹은 율법을 심각하게 범한 사람에게 시행되었습니다. 매의 숫자는 신 25:1-3에 근거하여 40대까지는 때릴 수 있지만 그 이상 때리면 사람이 죽을 수 있음을 염려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피할 수 있었을 매를 195회 맞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동족에게 복음 전파하는 일에 열심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 번 태장으로 맞았는데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한 번 돌로 맞았는데 아마도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돌로 침을 당했던 일을 상기하는 것 같습니다(행 14).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습니다. 이외에도 그가 겪어야 했던 위험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육체적 고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난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를 위한 염려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에게 유린되고 있는 연약한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방울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직면했던 환란에 대해서 36절에서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44편 2절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구약에서도 선지자들이 주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는 죽임까지도 당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말씀해 줍니다. (히 11:37-38)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신약 시대에서도 지난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망해도 진즉 망했을 것이고, 수백번 망했을 법합니다. 그런데 그 어떠한 시련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믿는 자들이 고난과 환난에서 면제 시켜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견디어 이기게 하시는데 있습니다. 환난 속에서 함께 해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2. 넉넉히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의 뜻은 ‘이기는 자 또는 정복자 이상 (more than conquerors)’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과 시련을 정복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죽음을 맛보았지만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만유의 주로서 우주만물을 통치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이기셨고, 장차 다시 오실 때 원수 대적들을 이기고, 또 이기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이기는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이 주는 환난과 시련을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곁에서 자신을 강건하게 하셔서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예수님의 사랑은 바울이 힘들어 지쳐 있을 때에 곁에서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과 죄악의 권세에 맞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요행이나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완전하고도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3.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38,3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망’입니다. 사망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이별하게 하며, 우리가 살아가던 세상을 떠나게 합니다. 그러기에 사망은 가장 두렵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망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사망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폐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영광의 날에 썩지 아니할 새 몸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염려와 부와 쾌락에 대한 시험을 받습니다. 유혹들로 인하여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눅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렸다고 바울은 한탄했습니다(딤후 4:10). 이처럼 세상적 유혹을 받아 우리가 넘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징계와 연단을 통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관계를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은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설령 그들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일이나 장래 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에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장래에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떠한 ‘능력’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높음이나 깊음’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롬 8:28).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던져졌지만 그 모든 고난이 요셉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를 끊을 수 없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불과 같은 시련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제 아무리 높고 막강한 권세를 지닌 통치자라 할지라도, 인생의 과정이 아무리 험하다 할지라도, 또는 당장 우리를 잡아죽인다 할지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는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겠습니까?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결론:

현재 육신이 병약해 있고, 영적 침체에 빠져 있고, 삶이 권태롭습니다. 가정생활이 힘들고, 직장이 불안정해서 고민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력합니까?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죄를 이기지 못해 늘 허우적거리기 일쑤고, 나쁜 습관 하나 끊지 못해 질질 끌려 다니고, 사는 것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입니다. 사실 광활한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입니까? 내가 아무리 고통 가운데 몸부림을 쳐도 이 세상에서 누가 알아 줄 것 같습니까? 설령 오늘 밤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내일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잘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처럼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붙들고 깊이 숙고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의 경지에 깊이 들어가 보십시오. 그 사랑에 압도 당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염려하지 않을 거야. 우리 하나님께서 결코 날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날 지켜 주실 거야.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하나님이 날 가만 내버려 두실 리가 없지, 그래 나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 이렇게 깨달아지고 믿어지면 내 입술에서 찬송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 사랑이 있으면 다른 것들이 조금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에서 당당할 수 있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철 들지 않은 자식이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우리 인생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우리는 영광의 그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며 그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는 것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세상이 두 조각 나도 끊을 수 없는 이 사랑을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넉넉히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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