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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치유자 (03.08.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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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30회 작성일 Mar 09 2026

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3월 8일
본문: 마태복음 8: 14-17
제목: 우리의 치유자
설교자: 이강웅 목사

병문안하기 위해 커뮤니티 병원에 가면 주차장에는 언제나 차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오늘 이 자리에도 말 못 할 육신의 통증, 자녀를 향한 애끓는 마음, 깨어진 관계로 밤잠을 설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아픈 사람들이 아주 많았던 같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구름떼처럼 병자들이 몰려왔고, 그리고 밤늦게까지 예수님은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쉴 틈조차 없어 종종 한적한 곳을 찾으셨지만 그곳까지 사람들은 미리 알고 찾아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은 한 가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단순히 ‘병을 고치셨다’는 사실 이상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치유와 회복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1. 예수님의 치유 사역

(마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예수님의 사역은 천국 복음 선포, 가르침, 그리고 치유,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셋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회복이 일어납니다. 치유가 나타납니다. 귀신들이 쫓겨나갑니다.

마태복음 8장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의 종의 중풍병을 고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키셨습니다.

불치의 병도 고치셨습니다. 마비된 몸도 고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한 분 한 분을 천하보다 더 귀한 자로 여기며 치유하셨습니다. 마태는 이 광경을 보면서 이사야 53:3,4절에서 예언한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여기서 “짊어지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에바스타센입니다.이 말은 단순히 “동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짐을 옮겨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처방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병을 대신 지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끊임없이 치유 사건을 기록합니다. 왜일까요?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긍휼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도무지 억제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비참함을 보시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귀신이나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그들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 앞으로 나오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주님은 내 병을 고칠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완고한 자들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려고 무덤으로 찾아 온 주님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마태복음11:3-6). 이처럼 하나님 아들 되심을 증거 하는 표적으로 이적과 기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2. 치유하는 하나님 나라

그런데 치유는 단순히 몸의 질병이 낫는다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더 큰 시각에서 보면 예수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 죄 사함을 받는 것,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은혜의 왕국이 임하는 것, 이 사회에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생명의 역사가 임하는 것, 사단의 왕국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여 나라와 민족이 영적 도덕적으로 회복되는 것까지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르완다, 우간다, 탄자니아의 선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르완다에서 복음의 치유가 무엇인지 무엇인지 분명히 보았습니다. 주님의 치유가 단지 개인의 질병을 고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파괴된 한 민족과 사회를 어떻게 다시 일으키시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르완다는 1994년에 비극적인 ‘제노사이드’(인종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단 100일 만에 100만 명 가까이 학살당한 나라입니다. 이웃이 이웃을 죽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나라였습니다. 사단은 인간의 죄성과 증오를 이용해 그 공동체를 영원히 멸망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의 땅에서 저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신’ 예수님의 손길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과거에는”나는 후투족이다”, “나는 투치족이다”라며 편을 가르고 증오하던 이들이, 이제는 “나는 르완다 사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단순히 개인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민족을 치유합니다. 복음은 사회를 치유합니다. 복음은 역사를 치유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영적 전쟁입니다. 불신의 땅에는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히 똑똑한 줄로 생각하지만, 실상 사단의 종이 되어 온갖 미신과 죄악에 사로잡혀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풍조와 풍습을 좇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복음이 선포되면 당연히 격렬한 영적인 전투가 벌어집니다. 어둠의 영들이 자기 소유를 지키기 위해 거친 반격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사단의 왕국이 존재하고 있고, 그 나라는 나름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적인 명령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사단이 이렇게 일사분란한 조직을 갖추고 세상에서 일관되게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존귀하게 창조한 인간을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사단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속임입니다. 죄를 달콤하게 포장해 유혹합니다. 또 하나는 억압입니다. 거짓 가르침과 두려움, 질병과 절망으로 사람을 묶어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치 빛이 비추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마귀의 왕국은 쫓겨나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사단의 지배 아래서 비참한 삶을 살던 자들이 해방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결핍과 부족으로 말미암은 고난으로 부터 해방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들어가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유와 기쁨과 평강과 축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이 나사렛 선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한 개인의 치유와 회복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가정이 회복되고, 지역사회와 국가와 민족까지 새롭게 하여 변혁시킬 것입니다. 복음이 온전히 전파될 때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와 불의한 권력, 인종이나 남녀 성별에 따른 차별, 이념과 지역감정 대립과 갈등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샬롬을 구현해 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장인 삭개오에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돈이면 다 된다는 맘몬신, 황금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초청에 삭개오는 회개하고 하나님 통치를 받아들입니다. 이때 예수는 “이 집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다”고 선언합니다. 삭개오에게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 샬롬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자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샬롬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샬롬이 우리에게 임하면 현재 겪고 있는 각양 스트레스와 갈등, 그리고 곤고함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입니다.

3. 믿음, 치유의 통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행 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오른손을 잡아 일으킬 때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일어나 뛰어 서서 걸으며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권능이 나타났습니다.(행 19:12)

오늘날 교회에도 이 치유와 회복의 능력과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이미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십자가위에서  담당하시며 우리의 약함과 질병까지 짊어 지셨기 때문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런데 이 은혜는 믿음이란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이면 됩니다. 이 믿음으로 어떤 연약함과 병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실패하기도 하고, 실직도 하고, 질병을 앓기도 하며 또 많은 상처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여기서 좌절하거나, 이에 묶여 포로가 되지 말고, 오히려 십자가의 능력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십시오. 어떤 병들고 눈 먼 사람이 예수께 나아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의 죄 때문에 이런 병에 걸렸습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누구의 죄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 위한 병이다” 참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의 눈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병이라고 아주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하십니다.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보세요.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 시체가 썩어 가는데 그 무덤 앞에 서서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호령하십니다.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죽은 자도 산 자처럼 호령하여 부르실 수 있는 분, 그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한 번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음부의 권세를 그분이 가지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이 아침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이 믿음을 부어주시길 원합니다.

결론:
그렇다면 이 복음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삶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반드시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없으면 응답도 없습니다.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구할수록 하나님의 응답도 분명해집니다. 또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기도 응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 기도 응답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더 큰 일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기도한 후에는 응답을 기대하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말라”(야 1:6). 반신반의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 원하시는 분임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2) 올바른 동기로 기도하십시오. 치유의 목적이 내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을 위한 삶에 있어야 합니다. 왜 병을 고쳐 주셔야 하는지,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어떻게 살 것인지가 확실해야 합니다.

3) 삶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죄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바로 세우십시오. 시편 66편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죄의 길을 버리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습관으로 몸을 관리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때로 간절히 구해도 ‘육체의 가시’가 즉각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바울에게 말씀하셨듯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며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하시고,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완성하시려는 더 깊은 차원의 치유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치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유자이신 주님의 손을 끝까지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척 우드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병에 걸리면 나는 하나님이 치료해 주실 때까지 기도할 것이다. 아니라면 그 병이 하나님의 뜻임을 그분이 보여주시고, 병에 대해서 평화로운 마음을 주실 때까지 나는 기도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질병이 있습니까?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묶여 있는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분, 우리의 병을 짊어지신 분, 우리의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오늘 우리 가운데 질병이 떠나가고, 상처가 치유되고, 영혼이 회복되는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힘 있게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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