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투의 승리 (영적 전투 2) (02.15.20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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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6년 2월 15일
본문: 사무엘상 17:32-49
제목: 영적 전투의 승리 (영적 전투 2)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역사가들에게 지난 20세기에 일어났던 전쟁 가운데 가장 탁월한 작전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흔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총사령관이 주도했던 인천상륙작전을 들곤 합니다.
1950년 8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작전회의가 열렸을 때 대부분의 참모들은 이 작전에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크고, 항구로 들어가는 해협은 좁고 구불구불하여 적이 지뢰를 매설하기에 매우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형 전함들이 인천항으로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판단하에, 참모들은 보다 안전한 군산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인천을 그토록 위험한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적 또한 우리가 그처럼 무모한 시도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인천을 선택하겠습니다.”
마침내 그의 결단대로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고,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단번에 뒤집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성공 확률을 계산하고, 눈에 보이는 지표들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2026년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확률’과 ‘통계’라는 이름의 성적표를 받아듭니다. “너의 노후 준비는 충분치 않다”, “이 질병에서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경제 상황에서 네 사업이 살아남을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세상의 차가운 데이터 앞에 우리는 맥아더의 참모들처럼 불안해하고 뒷걸음질 칩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승리는 인간의 계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에서 나옵니다. 세상이 “안 된다, 불가능하다, 위험하다”라고 말하는 그 골짜기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 ‘영적 상륙작전’을 감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는 그 절망의 골짜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승리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2026년의 골리앗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묵상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서 전전긍긍했던 상황에서 소년 다윗은 어떻게 용감히 대항하여 나아갔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신앙의 논리로 무장하라
믿음의 법칙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누구를 믿느냐, 우리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냐 작으냐, 좋으냐, 나쁘냐’보다도 믿음의 대상이신 분이 어떤 분이시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이 하나님을 믿는데서 시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장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군대가 마주한 골리앗은 실로 압도적입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골리앗의 갑옷 무게만 약 57kg입니다. 그가 들고 있는 창날의 무게만 7kg이 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대 무기의 무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현실의 압도적인 무게’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의 무게, 고쳐지지 질병의 무게, 자녀 문제의 무게가 우리를 누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40일 동안이나 벌벌 떨었던 이유는 그 위용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골리앗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머리로 피상적으로 안 것이 아니라 삶으로, 체험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울 왕이 입혀주려 했던 무거운 갑옷을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논리’이자 ‘인간의 계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골리앗을 이기려면 너도 저만한 갑옷을 입어야 해. 너도 저 정도 스펙을 쌓아야 해.” 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세상의 갑옷은 우리를 더 무겁고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신앙의 논리가 없는 사람은 뉴스의 논리, 통계의 논리, 세상의 예측 논리에 끌려다닙니다.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오늘을 불안해합니다. 반면에 다윗은 광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논리를 선택했습니다.
(대상 29:11-12)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다윗의 마음속에 이 ‘신앙의 논리’가 세워지니까 주위의 비난과 형들의 무시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싸울 대상은 골리앗이지, 곁에서 시비 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은 조그만 시비에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너그럽습니다. 관대합니다. 사소한 혈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목표에만 집중합니다. 2026년, 세상의 숫자가 여러분을 위협하기 전에 미리 이 신앙의 논리로 무장하시길 바랍니다.
2. 일상의 승리가 거물을 쓰러뜨린다
큰 위기가 닥치면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크고 작은 시련 가운데 믿음으로 싸워본 사람만이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은 마치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던지는 연습과도 같습니다. 이런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점점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는 다윗이 대단히 무모하게 보였습니다. 당연합니다. 골리앗은 아무도 쉽게 쓰러뜨릴 수 없는 용사였고, 다윗은 목동소년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서 사울왕도 말립니다. (삼상 17:33)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합리적 판단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용기는 근거없는 허황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구체적인 삶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삼상 17:34)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생한 경험은 지금 이 순간 골리앗과의 싸움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급한 일이 발생하며 허겁지겁 부랴부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외치지만 공허합니다.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미리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믿음으로 작은 승리를 거두십시오.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십시오. 작은 일에도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직장생활에서 정직하고, 가정에서 인내하십시오. 이것들이 여러분의 물맷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작은 일에 순종함으로써 크신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통한 작은 승리가 나중에는 더 큰 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작은 승리를 거두도록 하십시오.
다윗이 평소 목동차림대로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나아가니까 골리앗은 소년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야유하며 조롱하고 저주합니다.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위협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소박한 신앙의 도구(말씀 읽기, 작은 기도)를 비웃지만, 하나님은 그 약한 것을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일상의 승리가 거물을 쓰러뜨린다
3.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
다윗은 골리앗의 위협에도 조금도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후퇴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눈이 골리앗이 아닌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고 하나님의 크기에 압도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게 골리앗은 ‘너무 커서 이길 수 없는 대상’이었지만, 다윗에게 골리앗은 ‘너무 커서 물맷돌을 던지면 빗나갈 수가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시선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운 환경 속에서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지금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담대히 외칩니다. (삼상 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것은 만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용기입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졌을 때, 그것은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박혔습니다. ‘꽈당’ 하며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거구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참으로 통쾌한 승리입니다. 이 승리는 바로 믿음의 승리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단순한 믿음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반드시 통쾌한 승리를 주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진정한 승부처는 외적인 조건이나 세상의 데이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면세계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6장 13절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명령하시는 대상은 바로 우리의 속사람, 영혼, 그리고 마음입니다. 적군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과 어떤 상황에도 꺾이지 않는 '영적 기백'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서 당당히 허리를 펴는 영적 담대함을 가지라고 명령합니다.
28장에 나타난 사울 왕을 보십시오.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른 노련한 지휘관이었고, 외관상 신장이 크고 건장한 사나이였습니다. 최고의 권력과 수만 명의 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군대를 보자마자 그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크게 떨렸습니다(삼상 28:5). 그리고 그 어떤 외적 조건도 그의 무너진 마음을 붙들어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뒤 속사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사울은 심지어 무당까지 찾아가 점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리고 다음 날 자기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가 흔들리면 전 인격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똑같은 전쟁터에서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사울처럼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었지만, 그의 속사람은 누구보다 강건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 18:29)
다윗은 이렇게 내면이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었기에 골리앗 앞에서도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돌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보다 더 확실한 승리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2026년 한 해,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십시오. 먼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병들고, 삼손처럼 자기 머리털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영적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숙달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토양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만이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마르지 않는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 고백과 함께, 기도로 깨어 있고 말씀으로 속사람을 남자답게 무장하여, 우리 앞의 모든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통쾌한 영적 승리를 거두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날짜: 2026년 2월 15일
본문: 사무엘상 17:32-49
제목: 영적 전투의 승리 (영적 전투 2)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역사가들에게 지난 20세기에 일어났던 전쟁 가운데 가장 탁월한 작전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흔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총사령관이 주도했던 인천상륙작전을 들곤 합니다.
1950년 8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작전회의가 열렸을 때 대부분의 참모들은 이 작전에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크고, 항구로 들어가는 해협은 좁고 구불구불하여 적이 지뢰를 매설하기에 매우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형 전함들이 인천항으로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판단하에, 참모들은 보다 안전한 군산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인천을 그토록 위험한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적 또한 우리가 그처럼 무모한 시도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인천을 선택하겠습니다.”
마침내 그의 결단대로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고,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단번에 뒤집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성공 확률을 계산하고, 눈에 보이는 지표들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2026년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확률’과 ‘통계’라는 이름의 성적표를 받아듭니다. “너의 노후 준비는 충분치 않다”, “이 질병에서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경제 상황에서 네 사업이 살아남을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세상의 차가운 데이터 앞에 우리는 맥아더의 참모들처럼 불안해하고 뒷걸음질 칩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승리는 인간의 계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에서 나옵니다. 세상이 “안 된다, 불가능하다, 위험하다”라고 말하는 그 골짜기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 ‘영적 상륙작전’을 감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는 그 절망의 골짜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승리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2026년의 골리앗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묵상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서 전전긍긍했던 상황에서 소년 다윗은 어떻게 용감히 대항하여 나아갔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신앙의 논리로 무장하라
믿음의 법칙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누구를 믿느냐, 우리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냐 작으냐, 좋으냐, 나쁘냐’보다도 믿음의 대상이신 분이 어떤 분이시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이 하나님을 믿는데서 시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장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군대가 마주한 골리앗은 실로 압도적입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골리앗의 갑옷 무게만 약 57kg입니다. 그가 들고 있는 창날의 무게만 7kg이 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대 무기의 무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현실의 압도적인 무게’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의 무게, 고쳐지지 질병의 무게, 자녀 문제의 무게가 우리를 누릅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40일 동안이나 벌벌 떨었던 이유는 그 위용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골리앗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머리로 피상적으로 안 것이 아니라 삶으로, 체험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울 왕이 입혀주려 했던 무거운 갑옷을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논리’이자 ‘인간의 계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골리앗을 이기려면 너도 저만한 갑옷을 입어야 해. 너도 저 정도 스펙을 쌓아야 해.” 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세상의 갑옷은 우리를 더 무겁고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신앙의 논리가 없는 사람은 뉴스의 논리, 통계의 논리, 세상의 예측 논리에 끌려다닙니다.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오늘을 불안해합니다. 반면에 다윗은 광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논리를 선택했습니다.
(대상 29:11-12)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다윗의 마음속에 이 ‘신앙의 논리’가 세워지니까 주위의 비난과 형들의 무시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싸울 대상은 골리앗이지, 곁에서 시비 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은 조그만 시비에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너그럽습니다. 관대합니다. 사소한 혈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목표에만 집중합니다. 2026년, 세상의 숫자가 여러분을 위협하기 전에 미리 이 신앙의 논리로 무장하시길 바랍니다.
2. 일상의 승리가 거물을 쓰러뜨린다
큰 위기가 닥치면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크고 작은 시련 가운데 믿음으로 싸워본 사람만이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은 마치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던지는 연습과도 같습니다. 이런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점점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는 다윗이 대단히 무모하게 보였습니다. 당연합니다. 골리앗은 아무도 쉽게 쓰러뜨릴 수 없는 용사였고, 다윗은 목동소년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서 사울왕도 말립니다. (삼상 17:33)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합리적 판단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용기는 근거없는 허황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구체적인 삶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삼상 17:34)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생한 경험은 지금 이 순간 골리앗과의 싸움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급한 일이 발생하며 허겁지겁 부랴부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외치지만 공허합니다.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미리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믿음으로 작은 승리를 거두십시오.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십시오. 작은 일에도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직장생활에서 정직하고, 가정에서 인내하십시오. 이것들이 여러분의 물맷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작은 일에 순종함으로써 크신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통한 작은 승리가 나중에는 더 큰 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작은 승리를 거두도록 하십시오.
다윗이 평소 목동차림대로 막대기와 물매를 가지고 나아가니까 골리앗은 소년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야유하며 조롱하고 저주합니다.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위협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소박한 신앙의 도구(말씀 읽기, 작은 기도)를 비웃지만, 하나님은 그 약한 것을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일상의 승리가 거물을 쓰러뜨린다
3.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
다윗은 골리앗의 위협에도 조금도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후퇴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눈이 골리앗이 아닌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고 하나님의 크기에 압도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게 골리앗은 ‘너무 커서 이길 수 없는 대상’이었지만, 다윗에게 골리앗은 ‘너무 커서 물맷돌을 던지면 빗나갈 수가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시선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운 환경 속에서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지금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담대히 외칩니다. (삼상 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것은 만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용기입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졌을 때, 그것은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박혔습니다. ‘꽈당’ 하며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거구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참으로 통쾌한 승리입니다. 이 승리는 바로 믿음의 승리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단순한 믿음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반드시 통쾌한 승리를 주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진정한 승부처는 외적인 조건이나 세상의 데이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면세계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6장 13절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명령하시는 대상은 바로 우리의 속사람, 영혼, 그리고 마음입니다. 적군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과 어떤 상황에도 꺾이지 않는 '영적 기백'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서 당당히 허리를 펴는 영적 담대함을 가지라고 명령합니다.
28장에 나타난 사울 왕을 보십시오.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른 노련한 지휘관이었고, 외관상 신장이 크고 건장한 사나이였습니다. 최고의 권력과 수만 명의 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군대를 보자마자 그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크게 떨렸습니다(삼상 28:5). 그리고 그 어떤 외적 조건도 그의 무너진 마음을 붙들어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뒤 속사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사울은 심지어 무당까지 찾아가 점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리고 다음 날 자기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가 흔들리면 전 인격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똑같은 전쟁터에서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사울처럼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었지만, 그의 속사람은 누구보다 강건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 18:29)
다윗은 이렇게 내면이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었기에 골리앗 앞에서도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돌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보다 더 확실한 승리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2026년 한 해,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십시오. 먼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병들고, 삼손처럼 자기 머리털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영적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숙달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토양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만이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마르지 않는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 고백과 함께, 기도로 깨어 있고 말씀으로 속사람을 남자답게 무장하여, 우리 앞의 모든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통쾌한 영적 승리를 거두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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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EaU3K_ALgMk 29회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