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12.07.2025) 주일예배
페이지 정보
조회조회 14회 작성일 Dec 08 2025본문
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12월 7일
본문: 마태복음 3:1-12
제목: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개신교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강절기(Advent)로 지킵니다. 대강절이란 기다릴 대(待)와 내릴 강(降)자를 써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단지 과거의 예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장차 다시 오실 재림이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 중에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생활과 내면세계를 정돈하고, 영혼을 정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구세주의 오심을 진정으로 환영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시대는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로마는 무서운 군사력을 가지고 맞서는 나라들을 완전히 제압하여 다시는 들고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한니발을 내세워 로마제국과 맞싸웠던 카르타고는 결국 멸망하여 수도는 불태워졌고, 그 땅에 소금이 뿌려졌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이었지만 그 나라 역시 죄악이 가득하고, 불의하며 부패한 나라이었습니다. 당연히 제국의 지배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압제로 인해 신음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가운데 살아가던 그들은 하루속히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들이 대망하는 하나님 나라란 메시야가 와서 로마 군대를 무너뜨리고, 독립된 국가로써 더 이상 고통이 없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천국)’는 그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칼과 창이 아닌, 십자가와 사랑으로 임하는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이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요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를 거부하였을까요? 왜 메시야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까요? 저들이 무지하여서 영광의 주를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합니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왕을 원했지, 자신들의 죄를 다스리고 통치하실 진정한 왕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대강절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겠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과연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주님 만날 날을 잘 준비할 수 있을지, 세례 요한의 외침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합니다.
상업적 크리마스 문화에 깊이 빠져 있는 우리에게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아주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말구유, 목자들, 밤하늘 별들과 천사들의 노래, 그리고 동방박사들로 표현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달리, 그는 약대 털옷을 입었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덥수룩한 수염과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 그리고 무섭게 책망하는 강렬한 설교, 우리가 선뜻 다가서기에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성탄절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입니다. 오히려 복음서 기자는 세례 요한이야말로 성탄절을 맞이할 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와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3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먼저 거칠고 높고 낮아 울퉁불퉁한 마음의 길을 평탄하게 해야 하는데, 그 시작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첫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습니다. 천국 소식은 기쁨이어야 하지만, 요한은 먼저 회개를 외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흥분 되고, 얼마나 마음이 설레겠습니까? 즐거이 뛰어 나가 꽹과리를 치고, 축포를 쏘아 올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로마의 압제아래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는 천국이 가까워 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무엇을 하라고 말합니까?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 영역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는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헬라 원어‘메타노에오’의 뜻은 ‘생각을 바꾸다’, ‘방향을 돌이키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며,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살던 삶의 방식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나의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구약에서 죄를 회개할 때에 자신의 몸에 재를 뿌렸습니다. 옷을 찢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는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나의 속마음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고백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 회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다윗입니다. 처음에는 다윗도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전쟁의 최전선에 앞세워 죽게 했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실을 은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열왕들도 그 정도는 다 하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이를 악하게 보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의 양심이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32: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나이다” 입을 굳게 다물고, 죄를 은폐하고자 했을 때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뼈가 쇠하였다고 했습니다. 시편 38:5절에서는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더라”고 말합니다. 몸은 화려한 왕궁에서 향기 나는 상아 침대에 누워 있지만, 영혼은 죄로 인한 상처 때문에 악취가 진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고”(시 38:2) “내 심장이 뛰고 기력이 쇠하고 눈도 침침해졌다”(시 38:10)고 합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마음에 절대로 평안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있던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왕이시어 회개하십시오!”“당신이 어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까? 당신은 은밀히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은 백주에 그 죄값을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삼상 12:9,12)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엎드러지면서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I have sinned against the Lord)”(삼상 12:13)
여기에 바로 다윗과 사울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도 죄를 범하고 선지자 사무엘에게 책망을 들었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백성들이 도망가서 어쩔 수 없이 제사를 드렸다” “좋은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진멸하지 않고 남겨두었다” “제발 사람들 앞에서는 저를 창피주지 마세요” 사울은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앞에서, 사무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이런 사울에게는 천국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저주가 임하고 비참하게 그의 생을 끝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실 되게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왕의 체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했습니다.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으니 당신이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삼상 12:13) 겸손히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며 회개하였을 때에 그는 죄의식의 고통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뼈가 쇠하는 아픔으로부터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1,2,5)
우리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실 되게 죄를 토로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말에 의하면 범인들이 잡히고 나면 오히려 잠을 잘 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잘 됐네요. 이제 마음이 후련하네요” 그런답니다. 죄를 감추고 숨어 사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까지는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의 회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다 요한에게 나아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스스로 나아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 속에는 자신의 죄 문제를 털어놓고 회개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마음 문을 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회개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화장지 한 통을 다 쓰며 내면문제를 쏟아 놓습니다. 그때 그 빈 마음에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진 심령에 천국의 은총이 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천국을 주시려는 사랑의 초청입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할 때 천국의 기쁨과 평안이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천국시민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같이 8, 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여기서 세례 요한은 우리가 단순히 회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무만 보시지 않고 그 나무가 맺고 있는 열매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키위에 우리들을 모두 올려놓고 키질을 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알곡만 남고 쭉정이는 모두 바람에 불려 날아가게 됩니다. 얼른 보기에는 알곡이나 쭉정이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무늬는 모두 다 신실한 신자요, 믿음이 좋은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키질을 해 보면 그 내용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알곡은 쌓이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불려 날아갑니다. 그러면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엄정하게 집행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심판 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의인들은 천국 잔치에, 악인들은 심판의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 아주 직설적으로 그들의 죄를 책망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7절)
성경에서 뱀, 독사는 사단을 상징합니다. 사단은 그 속성이 거짓되기 때문에 자신의 속셈을 숨기고 교묘하게 역사합니다. 사단은 독사와 같이 그 속에 독이 있어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지위에 도전이 된다 싶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감시하러 온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무섭게 책망한 것입니다. 지금 빨리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노가 임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지금 빨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 속에 감추어진 죄를 끄집어내서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때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진실로 받아드려 회개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런 큰 죄는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기해야 합니다. 가장 신령하고 거룩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더 엄중한 책망을 받았다는 점을. 그들은 겉으로는 고상하고 거룩한 체 하였지만 속마음은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거짓과 탐심, 시기심과 미움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들의 옷은 고상하고 화려하고 멋있었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더럽고 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 자신 스스로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또한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마음은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통치에 순복하십니까? 과연 천국시민으로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도대체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처럼 세례 요한 앞에 섰던 사람들도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눅 3:11-14).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자기 욕망과 탐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욕을 먹던 세리들도 와서 묻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법에 정해진 만큼만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라”
군병들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기소하여 돈을 강탈하지 말라. 받은 월급으로 족한 줄로 알라”
회개를 거창한 것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부터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두 가지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이유, 저런 구실을 붙여서 미루고 있습니까? 아기 예수로 오신 성자 하나님을 맞이하는 이 절기에,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대망하는 오늘 결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 시민답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회개는 세상 왕국에 속한 내가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여 세상을 향하던 내가 방향을 돌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 나의 주’로 믿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 이미 천국은 임한 것입니다.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드리면,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심령에 의와 평화와 기쁨이 충만히 임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미리 맛보는 삶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하늘의 법에 따라 진실하게, 의롭게, 거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영향력을 갖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서 놀람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보면 매력을 느낍니다. 심지어 그들을 핍박하면서도 그들은 두려워하고 부러워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세상 왕국입니까? 하나님 왕국입니까? 이미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이 임했습니까? 예수님이 왕 되심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그 분의 통치에 순복하십니까? 주님이 “진실로 내가 속히 오리라”말씀하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전심으로 환영하십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성찰해 볼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천국은 회개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천국시민은 회개의 열매를 맺습니다.
날짜: 2025년 12월 7일
본문: 마태복음 3:1-12
제목: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개신교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강절기(Advent)로 지킵니다. 대강절이란 기다릴 대(待)와 내릴 강(降)자를 써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단지 과거의 예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장차 다시 오실 재림이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 중에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생활과 내면세계를 정돈하고, 영혼을 정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구세주의 오심을 진정으로 환영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시대는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로마는 무서운 군사력을 가지고 맞서는 나라들을 완전히 제압하여 다시는 들고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한니발을 내세워 로마제국과 맞싸웠던 카르타고는 결국 멸망하여 수도는 불태워졌고, 그 땅에 소금이 뿌려졌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이었지만 그 나라 역시 죄악이 가득하고, 불의하며 부패한 나라이었습니다. 당연히 제국의 지배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압제로 인해 신음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가운데 살아가던 그들은 하루속히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들이 대망하는 하나님 나라란 메시야가 와서 로마 군대를 무너뜨리고, 독립된 국가로써 더 이상 고통이 없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천국)’는 그들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칼과 창이 아닌, 십자가와 사랑으로 임하는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이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요 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를 거부하였을까요? 왜 메시야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까요? 저들이 무지하여서 영광의 주를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합니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왕을 원했지, 자신들의 죄를 다스리고 통치하실 진정한 왕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대강절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겠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과연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주님 만날 날을 잘 준비할 수 있을지, 세례 요한의 외침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합니다.
상업적 크리마스 문화에 깊이 빠져 있는 우리에게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아주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말구유, 목자들, 밤하늘 별들과 천사들의 노래, 그리고 동방박사들로 표현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달리, 그는 약대 털옷을 입었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덥수룩한 수염과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 그리고 무섭게 책망하는 강렬한 설교, 우리가 선뜻 다가서기에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성탄절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입니다. 오히려 복음서 기자는 세례 요한이야말로 성탄절을 맞이할 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와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3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먼저 거칠고 높고 낮아 울퉁불퉁한 마음의 길을 평탄하게 해야 하는데, 그 시작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첫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습니다. 천국 소식은 기쁨이어야 하지만, 요한은 먼저 회개를 외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흥분 되고, 얼마나 마음이 설레겠습니까? 즐거이 뛰어 나가 꽹과리를 치고, 축포를 쏘아 올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로마의 압제아래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는 천국이 가까워 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무엇을 하라고 말합니까?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 영역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는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헬라 원어‘메타노에오’의 뜻은 ‘생각을 바꾸다’, ‘방향을 돌이키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며,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살던 삶의 방식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나의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구약에서 죄를 회개할 때에 자신의 몸에 재를 뿌렸습니다. 옷을 찢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는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나의 속마음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고백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 회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다윗입니다. 처음에는 다윗도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전쟁의 최전선에 앞세워 죽게 했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실을 은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열왕들도 그 정도는 다 하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이를 악하게 보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의 양심이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32: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나이다” 입을 굳게 다물고, 죄를 은폐하고자 했을 때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뼈가 쇠하였다고 했습니다. 시편 38:5절에서는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더라”고 말합니다. 몸은 화려한 왕궁에서 향기 나는 상아 침대에 누워 있지만, 영혼은 죄로 인한 상처 때문에 악취가 진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고”(시 38:2) “내 심장이 뛰고 기력이 쇠하고 눈도 침침해졌다”(시 38:10)고 합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마음에 절대로 평안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있던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왕이시어 회개하십시오!”“당신이 어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까? 당신은 은밀히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은 백주에 그 죄값을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삼상 12:9,12)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엎드러지면서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I have sinned against the Lord)”(삼상 12:13)
여기에 바로 다윗과 사울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도 죄를 범하고 선지자 사무엘에게 책망을 들었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백성들이 도망가서 어쩔 수 없이 제사를 드렸다” “좋은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진멸하지 않고 남겨두었다” “제발 사람들 앞에서는 저를 창피주지 마세요” 사울은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앞에서, 사무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이런 사울에게는 천국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저주가 임하고 비참하게 그의 생을 끝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실 되게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왕의 체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했습니다.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으니 당신이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삼상 12:13) 겸손히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며 회개하였을 때에 그는 죄의식의 고통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뼈가 쇠하는 아픔으로부터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1,2,5)
우리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실 되게 죄를 토로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말에 의하면 범인들이 잡히고 나면 오히려 잠을 잘 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잘 됐네요. 이제 마음이 후련하네요” 그런답니다. 죄를 감추고 숨어 사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까지는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의 회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다 요한에게 나아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스스로 나아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 속에는 자신의 죄 문제를 털어놓고 회개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마음 문을 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회개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화장지 한 통을 다 쓰며 내면문제를 쏟아 놓습니다. 그때 그 빈 마음에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진 심령에 천국의 은총이 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천국을 주시려는 사랑의 초청입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할 때 천국의 기쁨과 평안이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천국시민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같이 8, 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여기서 세례 요한은 우리가 단순히 회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무만 보시지 않고 그 나무가 맺고 있는 열매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키위에 우리들을 모두 올려놓고 키질을 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알곡만 남고 쭉정이는 모두 바람에 불려 날아가게 됩니다. 얼른 보기에는 알곡이나 쭉정이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무늬는 모두 다 신실한 신자요, 믿음이 좋은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키질을 해 보면 그 내용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알곡은 쌓이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불려 날아갑니다. 그러면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엄정하게 집행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심판 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의인들은 천국 잔치에, 악인들은 심판의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 아주 직설적으로 그들의 죄를 책망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7절)
성경에서 뱀, 독사는 사단을 상징합니다. 사단은 그 속성이 거짓되기 때문에 자신의 속셈을 숨기고 교묘하게 역사합니다. 사단은 독사와 같이 그 속에 독이 있어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지위에 도전이 된다 싶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감시하러 온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무섭게 책망한 것입니다. 지금 빨리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노가 임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지금 빨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 속에 감추어진 죄를 끄집어내서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때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진실로 받아드려 회개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런 큰 죄는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기해야 합니다. 가장 신령하고 거룩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더 엄중한 책망을 받았다는 점을. 그들은 겉으로는 고상하고 거룩한 체 하였지만 속마음은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거짓과 탐심, 시기심과 미움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들의 옷은 고상하고 화려하고 멋있었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더럽고 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 자신 스스로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또한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마음은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통치에 순복하십니까? 과연 천국시민으로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도대체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처럼 세례 요한 앞에 섰던 사람들도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눅 3:11-14).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자기 욕망과 탐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욕을 먹던 세리들도 와서 묻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법에 정해진 만큼만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라”
군병들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기소하여 돈을 강탈하지 말라. 받은 월급으로 족한 줄로 알라”
회개를 거창한 것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부터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두 가지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이유, 저런 구실을 붙여서 미루고 있습니까? 아기 예수로 오신 성자 하나님을 맞이하는 이 절기에,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대망하는 오늘 결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 시민답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회개는 세상 왕국에 속한 내가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여 세상을 향하던 내가 방향을 돌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 나의 주’로 믿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 이미 천국은 임한 것입니다.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드리면,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심령에 의와 평화와 기쁨이 충만히 임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미리 맛보는 삶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하늘의 법에 따라 진실하게, 의롭게, 거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영향력을 갖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서 놀람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을 보면 매력을 느낍니다. 심지어 그들을 핍박하면서도 그들은 두려워하고 부러워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세상 왕국입니까? 하나님 왕국입니까? 이미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이 임했습니까? 예수님이 왕 되심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그 분의 통치에 순복하십니까? 주님이 “진실로 내가 속히 오리라”말씀하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전심으로 환영하십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을 스스로 성찰해 볼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천국은 회개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천국시민은 회개의 열매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