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06.08.2025) 주일예배 >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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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rmons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06.08.2025)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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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조회 569회 작성일 Jun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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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레이한인제일장로교회의 주일예배입니다


날짜: 2025년 6월 8일
본문: 로마서 9:1–18
제목: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설교자: 이강웅 목사

서론: 어느 날 한 성도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만 구원받는다면, 전 제가 택함 받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목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럼 당신이 선택 받은 줄 알게 될 겁니다.” “그럼 믿지 않으면요?” “그럼 모른 채로 끝나겠죠!” 이 유머는 우리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을 동시에 담아낸 예화입니다.

오늘 부터 시작 될 로마서 9장은 11장까지 걸쳐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라는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주제는 상당히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큰 논쟁거리를 불러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은 그냥 두신다는 것이 사람들의 귀에 불공평하게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난해하고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갑작스럽게 9장부터 진술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이 진술한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으로 빚으시려고 미리 작정하셨습니다. 작정하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시느이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확신 가운데 이렇게 선포합니다.“내가 확신하노니…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여기에 우리 구원의 최고의 절정이고, 최종적 승리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 최종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의식합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이 확실하다면 왜 유대인들은 실패했습니까? 왜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요? 만약 그들이 실패했다면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위한 궁금증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이자 구원의 확신을 흔들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과연 하나님의 구원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 문제는 2천 년 전 로마 교회 성도들만이 갖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깊이 관련 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구원에 실패할 수 있나? 그렇다면 나의 구원은 확실한가?’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정말 실패 없이 나에게도 적응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까? 내가 임종의 자리에 있어도 흔들림 없이 천국을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질문는 단순히 ‘내가 천국에 확실히 들어 갈 수 있나, 아니면 실패할 수도 있나?’하는 개인적 구원 차원을 뛰어 넘어, 근본적으로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일하시며, 그분의 약속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이고, 그분의 구원은 얼마나 확실한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부터 11장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긍휼,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구원 계획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진술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고,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비록 우리 눈에는 느리거나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시간과 민족을 아우르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당면하는 어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으로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약속을 이루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반드시 그분의 뜻을 이루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애통함 (롬 9:1-5)

바울은 로마서 9장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향한 가슴 시린 애통함을 토로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언한다고까지 말하며 자신의 고백의 진정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1-3).

이 말씀은 바울의 비범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민족적 유대감을 넘어서는, 그들의 구원을 향한 그의 영혼의 불타는 열정이자 절절한 간구입니다. 마치 구약의 모세가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 숭배로 인해 진노하신 하나님께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소서"(출 32:32)라고 간청했던 것처럼, 바울도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구원 마저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 민족의 불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실패인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좌절될 수 있다는 증거인가?’하는 의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을 얼마나 놀라운 특원을 민족이었습니까? (롬 9:4-5).

  • 양자 됨과 영광: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택함 받아 그분의 특별한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출 13:21-22, 40:34-38).
  •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 시내 산에서의 율법 수여는 그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창 12:1-3, 출 20장).
  • 예배와 약속들: 성전 중심의 예배와 메시아에 대한 수많은 약속들은 그들의 영적 유산의 핵심이었습니다.
  • 조상들과 그리스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들의 조상이었고,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특권은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영광과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특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 역설적인 현실이야말로 바울의 마음을 찢는 고통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신비 (롬 9:6-13)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의 실패를 의미할까요?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롬 9:6)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혈통이나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두 가지 예를 통해 설명합니다.

  • 이삭과 이스마엘(롬 9:7-9):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롬 9:7)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혈통을 따라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된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맘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롬 9:9). 하나님이 선택이 인간의 혈통이나 노력이 아닌 약속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 야곱과 에서(롬 9:10-13): 더 분명한 예는 야곱과 에서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부모, 즉 이삭과 리브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롬 9: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편애하신다는 말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것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강조하기 위한 표현 방식입니다. 핵심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선행이나 업적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실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하등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이것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공로나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선택은 오직 그분의 은혜와 목적에 따른 것이다.
  • 우리가 택함받았다는 사실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 덕분이다.

3.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롬 9:14-18)

그렇다면 여기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것 아닌가요?” 이에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14절)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긍휼을 베푸셔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주권자이십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셨듯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5, 출 33:19)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긍휼을 베푸셔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누구에게도 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긍휼.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원함’이나 ‘달음박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16절입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어서 바로의 예를 듭니다. (롬 9:17-18)“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세우신 목적이 하나님의 능력을 그에게서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 9:16).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결국 그를 통해 자신의 크신 능력과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면,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죠.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강제로 죄를 짓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의 이미 굳어진 마음을 더욱 굳어지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성경은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며 번갈아 기록합니다. 이는 바로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이 동시에 작용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10 번 째 재앙에 이르기 까지 매번 바로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가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할 때 마다 재앙을 거두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더욱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갈 수록 위용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인 된 인간의 완악함을 당신의 거대한 구원 역사 안에서 활용하실 수 있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보여줍니다. 바로는 스스로의 완악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그 완악함마저도 당신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마치 어두운 배경이 밝은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듯이, 인간의 악함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대해서 요셉이 형들을 향한 고백 속에 나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이다”(창 50:20). 인간의 악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세상의 악과 고난 속에서도, 심지어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며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언제나 의로우시며, 그분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신실하심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확신을 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견고한 기초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혈통이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무한한 긍휼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그의 주권은 완전하고, 그의 긍휼은 크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진리 앞에서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이 진리 앞에서 우리는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겸손과 감사: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요. ‘나는 무엇을 잘해서 구원받았는가? 아니면,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과 주권적인 택하심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가?’오늘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그분 앞에 무릎 꿇는 겸손과 감사로 가득 채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2)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신뢰: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고난과 혼란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안에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닻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그분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 가운데 굳건히 서십시오.

  3) 담대한 복음 증거: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나 설득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에 달렸다는 확신은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용기를 줍니다. '저 사람은 안 될 거야'라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택하신 자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나 처지를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긍휼으로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생명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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