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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체험 (4)

글쓴이 : 몬트레이 관리자 날짜 : 2017-06-23 (금) 21:07 조회 : 58
1. 힘드냐? 나도 힘들다.

예전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패러디했다. 벼르고 별렀던 한라산 등반을 실행했다. 새벽에 일어나 출발지 성판악에 도착했다. 이 코스가 가장 완만한 코스라는데 그 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 하여튼 고생길 9시간 반이었다.

처음에는 산뜻한 출발이었다. 청정한 공기, 울창한 숲, 정비된 산행길이라 좋았다. 자갈길, 돌길, 사이사이에 나무판자길,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돌길. 등산화와 지팡이가 꼭 필요한 길이다. 전날 내린 비로 돌이 미끄러워서 발목이 삐끗할 수 있다. 길은 점점 가파지며 끝이 나지 않는다. 이미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는다. 중반을 넘어서니 몸이 나아가지 않는다. 딸과 아들은 야무지게 걷는다. 가방 속에 든 짐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래도 힘들어 하자 아들이 내 가방을 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런 채로 정상 바로 밑에 까지 왔다. 전망이 아름다워 핑계에 주저 앉았다. 산자락에는 구름이 깔리고, 숲은 짙은 녹색으로 덮여 있다. 올라 온 자들만이 누리는 호사다.

보통 정상이 눈 앞에 보이면 새 힘이 나는 법인데 내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는다. 아들은 혁띠를 풀어서 내어민다. 그 끝을 붙잡게 하여 끌어 당기면서 올라간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말로만 듣던 백록담이 저 아래다. 계속 된 가뭄으로 물이 말라 있었지만 참 평화롭고 신비롭다. 수년 전 백두산에 올랐던 감격이 되살아났다. 아내는 중학교 때 단체 캠핑한 이후로 처음이라서 울컥했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잠깐 머무는 동안 구름이 걷혔다가 다시 백록담을 서서히 가린다. 우리는 감격을 뒤로 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분명 더 쉬워야 할 텐데 오히려 더 위험하고 힘들다. 돌이 미끄러워 발 디딜 곳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발목 부상이나 낙상하기 쉽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추월해 가도 할 수 없다. 운동화를 신은 아내가 힘들어 하자 아들이 이번에는 엄마의 손을 잡아준다. 끝까지 붙잡아 주는 아들을 보고 내가 한 마디 했다. "우린 벌써부터 자식 덕을 보네." 숲 속은 빨리 어두어진다. 좀처럼 끝이 나지 않은 길에 조금 초조해 진다. 빨리 출발했기 망정이지 늦장 피었더라면 어쩔 것인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오르다 보면 결국 정상에 서게 되듯이, 하산하다 보면 결국 주차장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아야야 비명을 지르며 차에 올랐다. 내가 NoIn 되었음을 인증한 등산길이었다.


2. 돌밭

제주도에는 세 가지가 많다고 들었다. 바람, 돌, 여자. 돌이 많다는 것은 돌아다니며 확인할 수 있었다. 돌담장도 많고, 다듬은 돌로 보도 블록을 대신하여 깔고, 돌로 공원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돌을 깎아 공예품으로 팔고, 돌로 건축하고, 제주는 돌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제주도에 돌이 많다는 사실을 이번에 뼈에 새길 만큼 톡톡히 경험했다. 이전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한라산을 등정한 후에는 돌이 피부에 가슴에 와닿는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이었다. 젊은이들은 팔짝팔짝 뛰어내려가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발못이 삐끗할 수도 있고,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날 내린 비로 인해서 돌이 미끄러웠다. 군데군데 잘 다듬어 놓은 곳도 있었지만 원래 있었거나 갖다 놓은 자연석으로 된 길이 대부분이었다. 등산화를 신었어도 돌의 각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경사진 길에 몸이 지친 상태라 몸의 체중을 그대로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 잠시 잘 놓여진 나무판 길을 걷다가 돌길로 다시 이어지면 '또야?! 언제 끝나지?!'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온몸으로 돌의 존재를 체험하기는 처음이다.

이번 등산으로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 가운데 나오는 돌밭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 3:5-6)

양순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고집과 아집은 있다. 선입견과 편견이 있다. 획득한 지식과 경험에 의한 교만과 과신이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의한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칭하는 사람에게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소박한 꿈과 이상, 행복과 축복, 신념과 가치 체계 등이 있다. 겉모습이 고상해 보여도 육은 무익하다. 복음의 씨가 심어져도 이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돌밭이다. 겉으로 볼 때는 흙이 덮여 있지만 그 밑에 암반이 깔려 있다. 이것이 나의 한계이고, 고민거리다.


3. 은혜

20여년 전 청혼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방문했을 때 아내는 '목사가 목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자리를 마련하여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을 초대하였다. 고맙게도 그분들이 저를 좋게 보아주시고 밀어 주셔서 신속히 결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은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귀히 여기며 성실히 목회하던 그분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별다른 하자 없이 20년 이상 한 교회에서 목회를 마치면 원로목사가 될 자격이 생기는데 불과 몇 달을 앞두고 일부 교인들이 목회자 내쫓으려고 분규를 일으켰다고 한다. 목사님은 교회가 힘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자진 사임하셨다. 주위에서는 쉽게 포기해 버린 목사님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해 했다. 힘든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친구 목사님이 개척자금과 함께 교회가 자립할 때까지 매달 생활비 보조를 3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데 세상은 언제나 은혜로운 것만이 아니다. 그렇게 선히 베풀었던 친구 목사님이 갑자기 쓰러졌다. 생존확률이 거의 없다고 의사는 판정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생명을 연장해 주셨다. 더 이상 목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 목사님은 사임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마련해 준 거액의 은퇴금을 전셋방으로 전전하고 있는 자기 친구 목사에게 교회당을 구입하도록 전부를 주었다. 탐욕 부리는모습만을 보아온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다. 도움 받은 목사님도 '내 자신이라도 그 친구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갓 결혼해 고생하고 있는 딸들에게 한 몫을 먼저 챙겨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출가한 자식들이 있음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사모님과 의논해서 준 것이다.'며 고마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다. 수년 전 교회의 분란을 원치 않아 스스로 사임하신 목사님을 아신 하나님께서 친구 목사를 통해서 은혜를 입혀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죄와 허물과 실수로 얼룩진 인생을 하나님 아니고서 누가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줄 것인가? 이번 휴가도 그렇다. 교인들이 안식월 할 수 있도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내 주셨고, 저의 빈 자리에 이종도 선교사님이 새벽기도회까지 강단을 맡아주시고, 가는 곳마다 지인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환대해 주셨다. 관광으로 맛집으로 우리 가족을 데려가며 숙소를 마련해 주신다. 그리고 강단에 설 기회를 베풀어 주셨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척들0은 또한 기쁨으로 환영한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다. 앞으로도 이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살기 원한다. 한 달 쉬고 목회지로 돌아가야 하는 지금 마음이 복잡하다. 가장 큰 우려는 과연 앞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인생 길이라서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으나 이제 다시 하나님 은혜의 세계를 향해서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