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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체험 (2)

글쓴이 : 몬트레이 관리자 날짜 : 2017-06-13 (화) 00:52 조회 : 117
1. 비느하스여 일어나라

놀러만 다닐 수 없어 샘물초등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은혜샘물교회를 섬기시는 박은조 목사님과 여러 교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세운 기독교학교이다. 크리스찬 부모의 자녀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이고, 입학할 때 사교육하지 않기로 서약한다고 한다. 대신 실력 있는 크리스천 교사들에 의해서 철저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첫시간에 교사와 함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써 하루 수업을 시작한다.

지금 한국 교회의 장래는 매우 심각하다. 청소년들의 복음화 페센트가 2-3 프로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롭게 돌출된 선교지인 셈이다. 물론 오래 전 세워진 미션학교가 존재하고 있지만 무늬만 기독교학교이지 더 이상 신앙과 학문과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샘물초중고등학교는 기독교의 정신과 신앙을 바탕으로 세상 학문을 접근하는 통합 교육으로 진행된다. 과연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성공주의와 물질주의의 욕마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생존하길 원하는 학생들은 우선 발 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심정으로 입시준비에 바빠 복음이 파고들 틈이 없어 보인다. 출산율이 크게 떨어지고 기독교의 영향력은 쇠퇴하여 주일학교에 학생이 없다. 한국 기독교를 이끌어 가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더 이상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학교는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를 안내해 주신 목사님이 학교에 대한 소개를 하실 때 옆방에서 뜨거운 기도 소리가 들린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합심해서 기도하는 중이라고 한다. 인간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로하며 돌아왔다.


2. 사소한 일에 감동 받기

무등산은 광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도심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산행길이 있고, 바위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이 있어서 가족 야유회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라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 산기슭 언저리에서 자란 내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장소이다.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가까운 코스를 택하여 걷기로 했다. 잘 포장된 길은 걷기에 편하고, 양 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그늘이 되어 주었다. 숲속의 공기는 향기롭고, 녹색의 나무 잎들은 우리의 눈을 시원케 했다. 참 유쾌한 시간이었다. 등에 땀이 흐를 만큼만 적당히 오름길을 걷다가 뒤돌아서 내려 왔다.

그런데 나를 감동케 한 것은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한 마음 씀씀이에 있었다. 그것은 하산한 등산객들의 신발의 먼지를 씻어 버리도록 흐르는 물과 기다란 솔을 구비한 것이다. 그간 여행길로 먼지가 덮힌 신발을 물로 씻었다. 생각해 보니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번 산책로에서도 먼지 진드기를 털어 버릴 수 있는 공기 스프레이 총을 비치해 놓았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 정도까지 고려할 만큼 고국의 문화수준이 발전하였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우리 교회는 사소한 부분까지 섬세히 배려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간 우리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면 바뀌는 것이 귀찮아서 일부러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도 과연 우리처럼 괜찮다고 생각해 줄까? 불편함을 그냥 무시해 줄까? 첫 방문에서 그들은 우리 교회에 대해서 어떤 인상과 느낌을 가지고 돌아갈까? 우리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할 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 것이다.


3. 한국 교회

한국에서 두 번째 주일을 보냈다. 지난 주일예배에 이어서 이번주에는 금요철야 기도회와 주일오후 청년예배에서 말씀을 전하였다. 두 교회 모두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목사님과 사모님이 솔선수범하여 섬기는 모습이 교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 이에 교인들도 기꺼이 헌신과 열심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한국 교회가 아직도 생명력이 있음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많은 한국 교회가 경고의 나팔 소리에 각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이런저런 추문으로 얼룩진 한국 교회에 대해서 강해 설교자로 잘 알려진 존 맥아더 목사는 미국 기독교가 200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면, 한국 교화는 고작 100여년이라는 짧은 역사로 위기를 맞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끝났다'라는 평가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지도자들이 재물과 권력에만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한 때는 세계 교회의 모델이자, 희망이었다. 뉴브런스윅신학원의 이학준 교수는 아래와 같이 민족을 위해 초기 한국 개신교가 감당한 역할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언더우드가 처음 한국에 왔었을 무렵, 한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여 있었다. 국가적으로 가장 어렵고 힘든 때에, 초창기 기독교는 복음을 통해 한국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이 개화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개신교가 당시 전체 인구의 2%가 채 안되는 소수였음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 하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비폭력 저항운동(3.1운동)을 이끌었다.

이렇게 민족의 아픔을 품고 민족의 근대화와 계몽에 앞장서면서 민족의 공신력을 얻어,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예배당 건축에 헌금을 보내올 정도였다. 당시에는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근대화와 신학문을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 되었고, 조선이 세계와 교류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이라고 여겼으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운동과 자유 보존에 앞장서는 애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젊은이들이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교회에서 훈련받아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다. 기독교의 발전이 한국의 근대화를 의미했었다.

초기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새벽 기도, 헌신과 열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는데 성공했었다. 패배의식과 가난에 찌들어 있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방탕, 나태와 도박, 술, 담배 등 나쁜 습성들을 버리고 근면하고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심리적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개신교는 불교, 유교, 가톨릭보다 훨씬 후발 종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이런 영광의 시간들이 급속히 지나가고 있다. 자기희생과 섬김의 자리 대신에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기득권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교회는 집단 이기주의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과연 한국 개신교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각성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