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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풍요의 축복- 맘몬의 행복조건을 벗어버리기

글쓴이 : 김유정 날짜 : 2013-10-16 (수) 02:38 조회 : 2742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헌법에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이 법으로 보장된것처럼 아무도 불행하기 위해서 삶을 살거나 불행이 목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행복을 향한 욕구는 강한 반면 그 행복을 충족시켜주는 조건에 대해선 깊은 사고와 지식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불과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행복을 이루는 조건 세가지를 말해보라하면 1. 건강 2. 지식 3. 지혜가 많이 조건으로 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1. 돈 2. 많은 돈 3. 아주 많은 돈 이 등장합니다. 노골적으로 물질의 순위가 행복의 순위처럼 말해지고 재론의 의지없이 먹혀들어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건강/지식/지혜도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더구나 돈/많은 돈/아주 많은 돈도 아닙니다. 성경에 있어서 행복하기위해 가장기본이되는 것은 바로 <옳은것을 행하는 것>인 의로움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 우리는 무수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물론이고 때로 건강도 잃고 부와 명예도 없이 쫓겨다니고 지혜도 헛되고 지식도 헛되다고 고백하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풍요하심과 위대하심 그리고 끝임없는 감사와 충만한 평강이 있었습니다.       

돈에 가치를 둔사람은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러나 이시대의 맘몬의 역사는 아주 왕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가 그 영향권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한지 혹은 그 영향권안에 얼마나 노출 되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행복을 생각할때 우리는 어떤 느낌과 삶을 연상하게 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것은 만족과 충족감, 안정감, 풍요함 그리고 너그러움입니다. 그런 요소가 많이 느껴지면 느껴질 수록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 누구도 불안함.. 목마름.. 거침.. 완악함.. 참소함.. 이런것들이 행복한 삶의 요소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강하면 강할 수록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가진것과 상관없이 비참해 집니다.   

그런데 행복의 조건이 첫번째도 돈 두번째도 많은 돈 세번째도 아주많은 돈 이라는 척도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은 인색해 질 수 밖에 없고 불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일까요? 돈의 조건을 행복으로 환언하는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들을 단순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1. 인색함이 나타납니다. 
이들에게는 <돈을 쓴다>는 의미가 <행복이 나간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쓰면 불안해 집니다. 행복이 아주 많이 나가고 자신의 곁을 떠난 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금전적 손실을 죽음으로 보상하라 합니다.   
금전적 손실을 입게되면 분노하게 됩니다.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그것을 쉽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행복을 파괴한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보상을 받기 위해선 상대의 목숨까지라도 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도 예외가 아닙니다. 금전적인 손실을 크게 입거나 실패를 하게 되면 행복이 없어진 것입니다. 행복이 없는 인생을 죽음으로 자신을 처벌하려는 잔혹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3. 인륜과 천륜도 저버릴 수 있는 금전화된 관계정립을 합니다.     
<돈>을 생각하고 관계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언제든 돈에 의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언제든 돈 때문에 그 관계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도 나타납니다. 더많은 유산을 받기 위해 부모를 비난하고 혹은 부모가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의 은혜와 봉양을 거부하게 됩니다. 사업의 부도의 액수를 줄이기위해 서슴없이 위장 이혼을 하기도 하고 위장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온전한 충성과 충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돈을 행복의 절대 조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결과론적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인색함/생명을 경이 여김/물질에 따른 관계정립 .. 이런 삶이 행복의 본질인 절대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증상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모두가 예외없이 겪고 있는 증상들입니다. 강도의 경중이 다를 뿐 우리모두에게는 물질적 축복에 대한 열망이 있고, 물질적 풍요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박탈 당할 때 심리적 소외감과 불안을 크게 느낍니다.

그러나 그 물질적이 풍요에 더욱 앞서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로움입니다. 이 정의와 공정성이 무시가 된다면 그것으로 얻어진 어떠한 물질적인 이익도 절대로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그 물질은 우리 안에서 부패하게 되고, 발목을 붙잡게 되고 오히려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초조와 불안을 양산하게 되고 마비시키며 묶이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물질은 음식과 같습니다. 행복은 건강과 같습니다. 좋은 음식은 몸에 자양분이 되고 건강을 만듭니다. 그러나 병균이 가득한 음식은 몸에 독이 되어 건강을 해칩니다. 차라리 금식하는 편이 낫습니다. 음식을 보약과 독약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음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음식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반드시 보약이 되려면 음식은 정의와 공의라는 정결함의 그릇에 담겨 나와야 합니다. 음식자체가 그릇이 되거나 담아내는 깨끗한 그릇없이 음식만 나온다면 아무리 맛잇는 음식도 쉽게 부패하게 되어 독이 될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은 타인으로 부터 환경으로 부터 빼앗겨 질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진정한 풍성함은 그 기본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지는 영원한 풍성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당하는 것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고후6:9-10)"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