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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는 없고 미국에만 있는것 -법집행력

글쓴이 : 김유정 날짜 : 2013-09-13 (금) 00:57 조회 : 2031
올해 여름엔 유스 학생들이 모두 멕시코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학생들의 선교체험과 간증을 듣다보면 샌디에고를 거쳐간 국경 근접의 멕시코에는 불과 미국과 지근거리라고는 하지만 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낙후된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적지않은 고생을 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 차이와 격차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멕시코와 미국의 그 발전의 차이가 궁금해졌습니다.

신앙일까요? 사람일까요?
사실 신앙으로도 사람으로도 쉽게 납득될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보자면, 멕시코또한 인구 대다수가 카톨릭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토지와 자원의 측면에서도 결코 열악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기후가 좋고 살기가 좋다는 캘리포니아, 샌디에고등이 멕시코 땅이였고 이와같은 선상에서 같은 토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적 자원은 어떠합니까?
멕시코 민족은 또한 땅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농업이 멕시코 이민자들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제동이 걸릴 정도로 미국의 대부분의 농업은 멕시코 이민자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떨까요? 둘 다 법치주의 국가이며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치가 이루어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외적요인을 살펴보아도 서로 큰 차이가 나는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언뜻보기에는 과거의 <마야문명>의 문화유적지를 훨씬 많이 보유한 멕시코가 더 우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멕시코와 미국의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바로 <법> 집행의 의지와 능력의 차이입니다.

미국은 가장 엄격한 법집행을 하기로 유명합니다. 법앞에서는 유명인사나 정치인이나 할것없이 그 잣대로 처벌을 받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며 부호라 해도 누구도 예외적일 수 없습니다. 힐튼의 유일한 상속녀인 파리스힐튼도 몇번의 음주운전으로 철창신세를 진적이 있습니다. 그 뉴스가 대대적으로 신문전면에 보도 된적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불법을 저질렀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내렸던 역사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멕시코는 어떻습니까? 아마 멕시코에서는 결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법과 인정에 앞서기 때문입니다. 
경찰앞에서 돈만 흔들어보이면 눈감아주는 불법이 여전히 횡횡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멕시코는 <20불>이면 무엇이든 되는 나라라는 오명이 붙습니다.
법집행의 일선에 선 경찰이 바로 그렇습니다.   
많은 부정과 부패의 비리들은 <법>을 준수해야햘 지도부와 집행부가 <불법>을 묵인하고 솜방망이식의 행정력을 동원하는것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의 양국간의 발전의 차이는 <법 집행력>이 만들어낸 차이로 결론되어집니다.
가난한 거지였을때는 워낙 없으니 법이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재산이 불어나고 지켜야할 소중한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만큼 절실해 지는것이 그것을 보호받을 수 있는 <힘있는 약속>이 입니다. 결국 경제적 물리적 보호의 욕구가 국가의 기원이 되었으며 그 공평한 추인 법의 탄생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미국에는 있고 멕시코에 없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평한 <저울>입니다.
 
<법>이 살아있다는 것은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은 <공정 거래>의 <신뢰>로 활성화 됩니다. 
<법 집행력>은 단순히 자국내의 <질서와 기강>을 정립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국 신뢰도를 고양시켜 외국 투자를 유치하게 하고 탁월한 자원을 끌어들이는 그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영적 생활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있고, 말씀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의지를 확립하고 있는가 또한 그 지식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는 행동과 투자가 오늘 우리삶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가가 우리의 영적 성장의 차이를 가져오며 영적 성장이 단순히 우리의 신앙적 영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모든 곳곳에 걸쳐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불과 구름기둥으로 에굽에서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셨을때 그 40년의 여정속에서 하신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예로서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이스라엘민족을 국가로 성장하는 조직과 기틀을 마련하신것입니다. 그 기틀은 모세를 통한 <십계명>을 주심으로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법>을 주신다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부>와 <권세>를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실때 선행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것은 바로 의지력입니다. 
그 의지와 결단속에서 비로서 <틀>은 <질서>를 만들어 내고, <틀>와 <질서>가 이루어질때 주어진 축복이 온전히 축복이 될 수 있는 기능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사(moving)>하는것과 같습니다. 새집에 가서 이사짐을 풀때 우리는 각기 제위치에 모든 짐들을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침대는 침실에 식탁은 부엌에 .. 이렇듯 제위치를 찾을때 비로서 그 집은 집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서 사는 것이 되겠지요. <창고>와 <저택>을 구별짓는 것이 땅과 그 속에 있는 물건이 라기보다는 그안의 체계를 이루는 <틀>이겠지요.       

<법>이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는 아니지만 <법>의 틀 없이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우리가운데 어떤 법이 지배하는지를 살펴야 할것입니다.

육신의 육체적인 <게으름의 법>이 지배하는지 우리의 감정의 <기복적 법>이 지배하는지를 살펴야 할 때입니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끊임없이 훈련하고 연단하여 그 법이 우리의 삶의 가장 큰 기초와 뿌리가 되어 진정한 자유와 결실을 맺어야 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명확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믿는자에게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법의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얼마나 우리가 그 법을 집행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또 그 실행력이 있는가에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오직 <법>만이 다른 <법>을 상대할 수 있으나, 그 효과를 보려면 반드시 해당되는 <법>을 들고나와 적용시켜야 합니다. <법>은 존재의 의미가 아니라 <적용과 집행>의 문제입니다. 적재적소에 그것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적용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법을 잘 알고 사용하는것이 우리의 영성뿐만 아니라 삶자체도 큰 영향과 변화를 끼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강건하고 잘 되기를 간구하노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