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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오늘은 주일, <양의 문> 을 생각합니다

글쓴이 : 김유정 날짜 : 2020-05-18 (월) 01:16 조회 : 15
오늘은 주일, 온라인 예배로 시작된다.
교회는 Youtube에 올려진 예배의 순서에 따라 말씀이 진행된다.
오늘의 중심 구절은 요한복음 10장 7절 -10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양의 문이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옛날 팔레스타인에는 양 우리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작은 양떼를 위한 마을 공동체의 <우리>와 야외에 당일의 들판 가운데 <임시 우리>
양떼를 몰고 간 양치기들이 산속이나 당일에 마을로 돌아 올 수 없을 경우, 양 우리에 양을 들여놓는다. 이런 들판의 양 우리는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때 목자는 문의 입구에서 자신이 누워서 양떼를 지키면서 지켜야 한다.
<야외 우리>에는 문이 없었고 경계의 울타리만 있었다.
<내가 양의 문이다>는 그 의미는 그 문이 되어서 양을 지키는 <예수님> 이미지다.

들판 외부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오늘날 현대인의 들판은 과거 육체적인 위험이 아닌 정신적인 위험들로 무수하다.
여러종류의 허무한 논리, 이성, 속이는 말, 사기, 아첨등 포장은 그럴 듯하게 보이나
<도적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의 결과를 낳는다.
그런 상황 논리와 말에 의지하여 결단과 행동을 하면, 맘이 다치고, 삶이 점점 더 피폐해지고, 관계의 해결이 아닌 단절의 결과를 낳는다.

출애굽기 문설주에 징표로 행하게 했던 <어린 양의 피>, 그 피로 재앙이 건너 뛴다.
그 문은 차별받지 않은 문, 부유 불법 간음했던 자도 이 말씀에 따라 자신의 문설주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징표의 사인을 붙이게 되면 그 재앙이 넘어 갔다.
이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져있다. 우리 죄를 내가 가진 의로움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시는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감당하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나의 문으로 오는 양들은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게 되리라.
그 양에 문에는 상이 있었다. 양의 생명을 지지해 주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가장 큰 양식은 바로 영혼과 마음의 양식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물리적 위협의 시대는 지나갔다.
발달된 의학 기술은 어떤 것도 치료해 생명 유지의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가 낙심하는 영혼의 병에는 치료와 약이 없다.
내부의 스트레스와 고민,낙심이 영혼의 상처가 가장 위협이 되는 시대가 왔다.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 양식이 필요하다. 영혼의 양식, 그리스도 예수

사도바울의 고백, -어떤 상황속에서도 만족하는 비밀을 배웠다. 감사, 기뻐할 수 있다. 그가 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약 성경>의 70%를 차지하는 역사를 이룬다.

외부의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양 우리>에 들어가기에 힘써야 한다.
그 우리 안에서 외부의 환경이 어떨지라도 우리는 안전할 할 것이다. 그 안에서 평안하다. 실망, 수치로 끝나지 않는다. 양 우리의 출입을 지키시는 이가 그리스도 예수 이기 때문이다. 그 잎이 청청하며 복 된 인생이 된다.
이것이 믿는 자 우리의 믿음과 고백이다. 영광이며 자랑이다.

나는 오늘 말씀을 들으며 생각하게 된다.
나의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질병과 환경의 사람이 아니라 <내부>인 나 자신이다.
많은 외부 갈등도 사실은 내 자신의 <좁고 단편적 논리>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
해법이 아닌 상처를 내고, 흠집을 낸다.

그러나 놀라운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의 목자되심과 그의 양식이다.
 이러한 생명의 양식은 단절과 흠집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신다. 물리적 치료 뿐 아니라 삶 자체를 풍성하게 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생존을 넘어선 충만한 의미와 감동이 있는 삶이고, 나의 주변에게 힘과 용기, 삶의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는 힘이다.

외부의 환경은 과거처럼, 또 앞으로도 변화무쌍하며 여러 논리들로 가득 찰 것이다.
양과 같은 그런 연약하고, 어리숙한 속성, 고집은 제대로 된 <목자>를 만나기까지 다스려지거나 고쳐질 수 없다. 영혼의 꼴을 찾아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는 연습은 항상 삶 속에서 훈련되고 성장되어야 한다.

오늘 설교 말씀에 짝이되는 말씀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아나니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 10: 27.